독일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이자 뮌헨 대교구장 라인하르트 마르크스(Reinhard Marx) 추기경이 ‘유럽에서의 공동선’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다.
독일, 스위스, 프랑스 주교회의 연합으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 참석 후 마르크스 추기경은 프랑스 일간지 < La Croix >와 인터뷰를 갖고 성직자 성범죄에서 비롯된 가톨릭교회의 위기에 대한 의견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다음은 인터뷰 번역 전문이다.
‘새로운 교회’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는 교회’
가톨릭교회, 더 이상 가르치는 일에만 안주해선 안 돼
평신도 초대 않고 주교시노드를 소집해선 안 돼
문제는 ‘성직’과 ‘권력’을 혼동하는데서 발생한다.
근본적으로는 권력에 대한 새로운 고찰과 비전이 필요하다.
신앙은 ‘짐’이 아니라 ‘길’이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를 관통하는 위기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우리들은 현대적이고 다원적인 사회, 즉 종교적으로도 자유로운 사회 안에서 교회가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우리가 상상해야 할 것은 ‘새로운 교회’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자리를 잡는 교회 모습이다. 가톨릭 신자들 자체도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의식화의 정도가 각기 달라 어떤 이들은 과거 안에서 안정을 찾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성직자 성범죄뿐 아니라 재정 투명성 결여, (교회의) 침묵 문화 등이 드러나면서 (가톨릭교회가)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더욱 부각되었다. 이번 위기는 우리가 다시금 근본적 노력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는 셈이다. 가톨릭교회는 더 이상 가르치는 일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계시며, 가톨릭 신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사람들을 새롭게 신앙으로 초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가톨릭교회는 종종 개혁 요구에 앞장서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변화를 이해하는데 독일 가톨릭교회가 앞서 있는 것인가?
- 어떤 이들은 우리가 앞서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 가톨릭교회의 특징은 20여개의 대학과 신학 연구소에서 가르치고 있는 많은 신학 교수들, 특히 여성 신학 교수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저술, 논의, 출판을 통해 논의를 키워나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 역시 본당, 교구, 평신도 운동과 더불어 독일 가톨릭신자 중앙위원회(Zentralkomitees der deutschen Katholiken)를 통해 잘 조직되어 있다. 현재 (성직자 성범죄) 위기에서 독일 가톨릭신자 중앙위원회는 주교들과 가까운 입장이지만 비판적 업무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독일은 주요 교회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즉 개신교 신자가 가톨릭 신자만큼 많다는 것이다. 개신교 신학자들 역시 신문과 TV에서 입장을 드러내면서 논의에 자극을 준다.
‘교회를 고치기 위한’ 독일에서의 구체적 제안이 있는가?
- 이번 위기에 ‘독일식 해법’이란 건 없다. 활로는 보편교회와 함께 찾아야 할 것이지 로마에서만 찾을 것은 아니다. 지역교회 없이 보편교회를 생각할 수 없으며, 이 둘은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가 아니다. 독일 가톨릭교회로부터 배울 점은 있겠지만,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내가 보기에 아마 대한민국을 제외하고는 세계 각지에서 교회는 신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왜일까?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교는 미래의 종교(religion of the future)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리스도교가 진일보의 힘이라는 사실과, 그리스도교가 현재와 미래의 해답이라는 점을 설득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복음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모든 남성과 여성은, 피부색과 종교,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하느님을 닮아 있다. 우리는 한 가족이며,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말은, 그 급진성을 통해 우리를 다른 종교와 구분지어 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가장 필요한 메시지다.
그렇다면 구조 개혁이 부차적 문제라는 의미인가?
- (복음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증언이 먼저다. 물론, 나는 개선된 조직 그리고 특히 개선된 책임 분배에 찬성한다. 나도 깨닫는데 몇 년이 걸렸으나, 내가 보기에 남성, 여성 평신도를 초대하지 않고 주교시노드를 소집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이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또 다른 문제는 성직과 권력을 혼동하는데서 발생한다. 성직과 권력을 더욱 명확히 구분하고 사람들이 권력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의무다. 마찬가지로 여성을 교회 운영에 결부시키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권력에 대한 새로운 고찰과 비전이 필요한 것이다.
2주 전 독일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주교들이 모여 사제 생활에 대해 연구했다. ‘어떻게 사제 생활을 풍성하게 체험할 수 있는 사제를 양성할 것인가?’, ‘사제들이 사제 생활을 체험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 ‘애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남성을 서품해왔는가?’ 나는 사제 독신제가 가능하다고 보지만, 공동체의 입장도 이에 통합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제 만큼이나) 기혼 남성 서품(viri probati)라는 주제에 대해 고찰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직자 및 가톨릭신자의 동성애와 같은 가톨릭교회의 성윤리의 몇 가지 지점과 마찬가지로 위 주제들을 모두 다뤄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이러한 변화로 인해 신앙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에게 뭐라고 답변하겠는가?
- 나는 내가 가톨릭교회 교리의 비중을 줄이려 한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의 편지를 받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단호하고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그럴 의도가 아니다. 신앙은 짐이 아니라 길이다. 내 목표는, 일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시대 정신에 적응하는 것’도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복음에 따라 “시대의 징표를 읽는 것”이며, 이 일은 더 많은 노력을 요한다.
우리가 매주 주일 미사에서 복음을 함께 읽거나, 함께 가난한 이를 섬긴다면, 우리는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사이의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악마의 일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찾도록 하자. 그리고 신앙에는 여러 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