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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일, 무엇부터 시작할까
  • 이기우
  • 등록 2019-04-02 14: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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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화요일 ; 에제 47,1-9.12; 요한 5,1-16



오늘 독서를 전해준 예언자 에제키엘이 활약하던 시대는 그가 전해준 예언에 담긴 역동적인 희망의 메시지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암울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왕국이 멸망한 나머지 바빌론으로 끌려가 또 다시 종살이를 해야 했던 그 암울했던 시대에, 에제키엘은 예언자로서의 상상력을 십분 발휘하여 후대의 종교가 보여줄 희망찬 모습을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로 상징하여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의 양심이 마비되고 사회에 도덕성이 사라지면 세상에 망조가 듭니다. 종교가 망조가 든 사회를 되살리려면, 하느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고, 또 종교가 전해주는 메시지로 사람들이 회개할 만큼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 종교에 복무하는 일꾼들의 삶이 하느님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구세주로 오셔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당시만 하더라도 유다교는 에제키엘이 예언자로서 꾸었던 꿈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들은 겉으로 보면 면역력이 약해져서 질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해 장애가 생긴 이들이겠으나, 속으로 보면 당시 억압받고 수탈당해 골병든 유다인 사회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병리상태를 대변하는 희생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오신 구세주이신 예수님으로서는 아무리 서른여덟 해나 누워 있었던 불구자라 하더라도 그를 일으켜 세워서 걷게 하시는 일은 차라리 쉬운 일이었습니다. 하필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서른여덟 해나 고생하던 사람을 고쳐주신 예수님께 감사하거나 찬송하지는 못할망정 비난하기까지 하는 유다인들의 정신상태나 영적 병리상태를 치유하시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기 위해서 어떠한 생업에도 종사하면 안 된다는 비공식 율법 규정이 시퍼렇게 살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른여덟 해 동안 누워만 지내던 그 불구자가 깨끗이 나아서 자기가 누워 지내던 들것을 들고 다닌 행위를 문제 삼았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지만, 당시 유다인들은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규정한 대로, 그 어떤 생업도 해서는 안 되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세세한 금지조항들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다른 이들의 물건을 대신 날라다 주는 택배행위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 제한규정이 50미터로서, 남의 물건을 50미터 이상 날라다주면 생업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에 나오는 그 불구자는 남의 물건이 아니라 자기가 누워 있던 들것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보기에 남의 물건을 날라다 주는 것처럼 보였기로 시비의 대상이 됩니다. 진상이 밝혀지고 나서도 한번 완고해진 유다인들의 심성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필 안식일에 시빗거리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가르친 십계명의 전통이 살아있었어도 삐딱하게 알아듣고 있었고 도무지 계명의 본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시대의 우스꽝스런 에피소드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떨까요?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지금 십계명의 셋째 계명은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까요? 그 당시에 안식일에 종사해서는 안 되는 파공의 준수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면, 지금은 주일미사에 빠지지만 않으면 주일에 그 어떠한 일을 해도 무방하고, 심지어는 그 주일미사마저도 세례받은 신자의 80% 가량이 마음놓고 빠지는 대량 냉담자 발생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그런 추세가 굳어진 유럽 교회를 본받을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에 생명력을 전해주는 살아있는 종교가 되려면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일반 평신도들이 주일을 거룩히 지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수님의 모범대로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솔선수범하면서 이미 주일미사에 열심히 나오고 있는 신자들이 미사 참례말고도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지독한 유다교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익히 아시면서도 오랫동안 고생한 불구자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공동선을 실천하신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주일에는 선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한 출발점이 주일미사의 강론과 신자들의 기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신자들의 행실이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추어야 우리 교회가 세상에 생명력을 전해줄 설득력과 권위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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