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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 이기우
  • 등록 2019-04-03 17: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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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수요일 : 이사 49,8-15; 요한 5,17-30


▲ ⓒ 문미정


오늘은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7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제주와 오사카를 오가는 연락선 덕분에 제주 사람들은 유학생으로나 노동자로 오사카에 많이 갔었고, 해방 직후 이들이 귀향하여 일본 오사카에서 보고 들은 선진적 민권의식을 많이 전파했기 때문에 해방된 제주는 전국에서 건국준비위원회 산하 조직인 인민위원회가 가장 먼저 결성되고 가장 튼튼할 정도로 민권의식이 앞서 있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추구하고 있어서 조선을 침략했고 식민지로 만들었지만, 대내적으로는 아시아를 떠나 유럽을 본받겠다는 소위 ‘탈아입구’(脫亞入歐) 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권운동이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정 때문에 앞선 민권의식을 갖춘 민중과 다짜고짜로 밀고 들어온 미군정의 제주 지부와 이들이 고용한 일제 밀정들과 경찰들과는 긴장이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터에 1947년 3.1절에 3만 명이나 되는 도민들이 남북분단을 우려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재현하자 놀란 기마경찰이 군중의 기세를 누르려고 하다가 어린아이를 치어 다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경찰이 사과를 하기는커녕 항의하는 군중에게 발포하여 무고한 희생자들이 발생하자 도민들이 항쟁에 나섬으로써 시작된 사건입니다. 


도민들이 항의하는 평화 시위를 육지로부터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까지 불러들여 진압하려하자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명분으로 제주도 남로당원 350여 명이 무장봉기를 했고 이를 토벌하려던 군경이 이후 1954년 9월까지 당시 제주도민 인구 30만 명 중 3만여 명을 학살함으로써 일단락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이 사건이 제대로 된 이름을 갖지 못하고 그저 ‘제주 4.3 사건’이라고만 부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사건의 성격과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었거나 밝혀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해방 직후 제주도민들은 미군정과 리승만에 의한 단독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민족이 갈라지는 사태를 지극히 우려했고, 통일된 나라를 간절히 원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 바람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이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그 바람이 실현되기에 가장 희망적인 국제정세 속에 놓여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단순한 바람을 제주도 민중이 표현한 것만으로 이들은 지난 70년간 빨갱이로 몰려 수모를 당해야 했고 죽어가야 했으며 지금까지도 명예가 회복되지 못한 채로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 ⓒ 문미정


역사는 제주도민들의 외침과 희생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된 정세 덕분에 제주 4.3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있고 특별법이 제정되어 도민의 명예도 회복되는 길이 열렸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역사적 진실이 민족 구성원 전체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는 제주도민들의 외침과 희생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역사가 기억하는 제주 4.3 사건의 본질은 부당한 국가폭력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과 도민들이 하나된 민족과 온전히 해방된 조국을 염원했었다는 데 있습니다. 


역사가 진실을 잊지 않았던 사례는 이스라엘과 이사야 예언자에게서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바빌론 유배에서 황무지처럼 폐허가 되어 버린 고국에 돌아온 유다인들에게 이사야는 희망을 심어 주기에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동족이 하느님께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무진 애를 썼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없듯이, 하느님께서도 당신 백성으로 삼았던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신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쏟아부으셨던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셨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유다인들의 안식일 관행까지도 혁파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유다인들 사이에 하느님 신앙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진실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하느님과 대등한 존재로 당신을 내세운다면서 신성을 모독한 거짓 예언자로 몰아갔고, 예수님께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 제자들과 당신의 가르침을 듣던 군중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친근하게 섬길 수 있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하느님 교육이 빛을 발할 때는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이 심판을 받아 벌을 받을 사태가 오는 시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에서나 우리 사회에서나 하느님은 여전히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역사의 진실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을 믿는 이들을 심판의 도구로 삼으시어 악한 자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종교와 교회의 가장 핵심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진실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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