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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한 사람은 헤매게 마련이다’
  • 전순란
  • 등록 2019-04-05 10: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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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4일 목요일, 맑음



아침기도를 최목사님과 함께 했다. 우리가 오가는 발소리에 늦잠을 못 잤겠지만 이곳에서는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늦게까지 깨어 있다 잠들므로 아침은 11시나 먹는다는 한솜이도 8시 30분 되니까 일어나 식탁에 앉아 보스코와 무슨 얘긴가를 나눈다. 


나중에 들으니 ‘나는 지금 이 나이에도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꾸는데, 너는 어떤 꿈을 꾸느냐고?’ 물으니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꿈을 꿉니다.’라는 대답을 하더란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꾸고 컸으며 그 꿈을 이루려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던가! 그것이 이뤄지고 난 후에는 ‘이게 내가 꿈꾸던 바로 그 꿈인가?’ 반문할 때도 있다.


꿈이 너무 컸거나 아예 꿈이 없어 황량한 삶을 대책 없이 사는 경우도 자주 보고, 꿈을 이루지 못해 사람이 자신을 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청춘인 그에게 꿈은 살아있고 '꿈꾸는 한 사람은 헤매게 마련이다'(괴테). 



단 한 번도 이를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은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거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한비야, “꿈꾸지 않는 자, 청춘을 포기했네.”)


보스코의 알러지 약을 며칠 분 더 받고 내 입술이 터진 이유를 물어보겠다고 읍내 '홍은외과'엘 갔는데 선생님이 보스코의 약은 스테로이드 계통이니 절대 오래 먹어서는 안 된다고 3일 분만 지어 주셨다. 입술이 터지고 입안이 부어오른 내 병에는 ‘쉬는 게 우선’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누가 그걸 모르나, 괴기국에 밥말아 먹고 한 이틀 푹 쉬면 다 나을 병이라는 걸?’ 최원장님도 휴천재일기를 읽는지 ‘하루도 뺀한 날이 없으니...’라며 늘 분주한 날 꾸짖으신다.



양산댁이 나만 보면 신을 사다 달라는데 남의 발에 신기는 일이라 자꾸 잊어 먹는다. 오늘은 집에서부터 아예 메모지에 적어가 드물댁 꺼랑 함께 사다 주었다. 한여름 지낼 신발 한 켤레가 5천원밖에 안 한다. 남방도 5천원, 바지도 5천원, 돈을 악착 같이 벌지 않아도 살만한 게 이 5천원짜리 인생 덕분이다.


나도 이곳에 살며 백화점이나 대형슈퍼보다 시골장터가 활씬 친숙하고 편하니 시골아낙 다되었다. 얼마나 편한 신발로 내 발을 키웠는지 잘 나갈 때 명품이라던 신발들 이젠 불편하고 째서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역시 의상은 편한 게 최고다.


세상 끝날이 가까워지는지, 오늘도 강원도 쪽엔 산불에 돌풍으로 난리가 났고, 한겨울에도 눈이 별로 없는 제네바에는 4월인 오늘 흰 눈이 내렸다고 빵기가 사진을 찍어보냈다. 살만큼 산 우리야 별로 억울할 일도 없지만 이 할미가 저지르고 망친 세상에 우리 손주 시아 시우가 고생할 일이 걱정이다.



성삼재에 올라 노고단을 걷고(이제는 노고단 출입도 예약제더란다) 구례와 화계사 벚꽃길을 다녀온 한목사네가 8시가 다 돼서야 돌아왔다. 저녁식사로 컵라면 세 개를 사들고 왔는데 내가 그래도 명색이 친군데... 얼른 저녁을 해먹였다. 뭐든지 잘 먹는 가족이다. 


아침상에 조그만 고구마에 그만큼 큰 버터를 덩어리째 얹어먹던 최목사님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난다. 보스코가 그랬다면 내 잔소리에 뜨거운 고구마 위 그 버터처럼 녹아버렸을 꺼다.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며 행복한 우리 보스코, 오늘은 일찌감치 잠자러 들어갔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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