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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몸 통제하던 '낙태죄', 66년 만에 위헌 결정
  • 강재선
  • 등록 2019-04-11 18: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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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미정


헌법재판소는 11일 낙태죄 조항 (형법 제269조, 제27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산부인과 의사가 제기한 이번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은 헌법불합치 4명, 단순위헌 3명, 합헌 2명으로 헌법 합치 여부로만 따지자면 7대 2로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에서 해당 형법들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헌법불합치' 의견은, 단순위헌 의견과 동일하게 위헌임을 인정하나 곧바로 해당 법을 폐지할 경우 혼란이 초래될 것을 우려하여 관련 법이 폐지·신설될 때까지 그 효력을 인정하는 의견을 말한다.


낙태죄는 1973년 국가주도의 가족계획정책의 일환으로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는 예외를 둔 경우를 제외하고는 1953년 처음 제정되었을 때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예외라는 것이 대통령령이 지정하는 부모의 장애 또는 질환, 성폭행에 의한 임신 및 혈족, 인척 간 임신이라는 극히 드문 예시들인 탓에 임신중절수술은 사실상 대부분 불법으로 간주되어 왔다.


낙태죄는 특히 여성 인권을 우선하느냐, 태아의 인권을 우선 하느냐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천주교에서는 낙태를 ‘태아 살해’로 간주하고 이를 강력히 반대한다. 


최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역시 낙태죄 헌법소원을 앞두고 “낙태 합법화는 여성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라며 “임신한 여성과 태아 모두를 낙태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한국 천주교는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여 이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주교회의는 조국 민정수석이 낙태죄 논의에서 ‘태아 대 여성’, ‘전면금지 대 전면허용’과 같은 대립구도는 옳지 않다고 지적한 일을 두고 “가톨릭교회의 교리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하느님의 법은 언제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지켜야 하는 살아 움직이는 법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며 확고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어느 한 생명의 선택 문제로 몰고 갈 경우 어떤 쪽을 선택하더라도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애초에 이런 방식의 낙태죄 논의가 잘못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여성운동계에서는 이 문제가 어느 한 생명의 선택이 아니라, 형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며, 남성과 여성이 임신에 모두 책임이 있음에도 여성에게만 낙태죄를 묻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이에 앞서 2012년 헌재는 8명으로 구성된 낙태죄 헌법소원에서 4대4 의견으로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 대표로서 기본적으로는 낙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 서있다. 


그러나 낙태라는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힌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자비의 희년을 맞아 2016년에 낙태한 여성을 사면할 권한을 모든 사제들에게 부여한 바 있다. 이후 교황은 낙태죄 사면권을 무기한 연장했다. 


한편 판결 직후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유감을 표하고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주교회의는 "낙태로 말미암아 정서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큰 상처를 입고 화해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여성에게도 교회의 문은 변함없이 열려 있다. (...) 임신에 대한 책임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판결에 앞서 천주교, 개신교를 포함한 그리스도교 평신도 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고 임신중단의 비범죄화와 재생산권 보장을 외치며 천주교와 개신교가 "이성애-가부장제 중심의 정상가족 담론"에서 벗어나 "오랜 시간 외면해 왔던 여성의 고통을 진심으로 경청하고 사죄"하고 "여성이 임신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과 경험, 그 몸에 새겨진 사회적 모순과 억압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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