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내전으로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남수단(South Sudan) 지도자들을 교황의 거처인 바티칸 산타 마르타의 집(Domus Sanctae Marthae)으로 초청해 영성 피정을 진행했고 마지막날 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발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형제로서 부탁합니다. 평화 안에 머무십시오.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교황은 지난해 9월에 체결된 남수단 평화협정에 따라 오는 5월 공동정부를 구성하게 될 남수단 정치인들에게 “내가 형제로서 부탁합니다. 평화 안에 머무십시오. 진심으로 부탁합니다”라고 간청했다.
교황은 “그 과정을 시작했으니 잘 끝날 것입니다”고 격려하며 “여러분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당연히 있겠지만 이러한 충돌은 집무실 안에 머물러야 하며,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서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발언을 마치고 갑작스럽게, 수행비서의 부축을 받아 남수단 대통령과 부통령들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이들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바티칸 시국의 수반이자 전세계 12억만 가톨릭신자의 최고 지도자가 한 국가 정치인들 앞에 온몸을 숙여 발에 입을 맞춘 행위는 자신을 가장 낮추어서라도 평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간절함과 남수단 정부 요인들에게 보내는 요청의 간곡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남수단은 독립 이후에도 (북)수단과 역사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으며 남수단 내 부족 갈등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자 수가 인구의 80%에 달하면서도 가톨릭, 성공회, 개신교 등 종파 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남수단은 고 이태석 신부(살레시오수도회)가 톤즈 지역에서 헌신적으로 의료봉사를 했던 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이번 피정은 교회일치 정신을 통해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목표로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공회에서는 캔터베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대주교,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 총회장 존 찰머스(John Chalmers) 목사가 주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수단의 대통령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Salva Kiir Mayardit)와 전 부통령 리에크 마차르(Riek Machar), 제1부통령 타반 뎅 가이(Taban Deng Gai), 제2부통령 제임스 와니 이가(James Wani Igga)를 교황청에 초청한 것은 종교와 권력 투쟁을 이유로 민족 내부 갈등에서 벗어나 서로 형제임을 다시 깨닫고 분쟁을 멈춰달라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였다.
특히 대통령과 부통령의 갈등은 2013년 키르 대통령이 마차르 전 부통령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다고 비난한 이후부터 국민이 대통령을 따르는 정부군과 부통령을 따르는 반군으로 갈라져 서로에게 잔혹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4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간 갈등 해결에만 머물지 않고 오래된 역사적 갈등을 해결하고자 로마가톨릭교회 교황의 ‘국제적 중재자’ 면모를 발휘한 셈이다. 교황은 이미 미국-쿠바, 아프리카, 중동과 더불어 대한민국-북한 문제에서도 세계 평화 중재자로서 갈등 해결에 기여한 바 있다.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인 동시에 국민을 책임질 의무를 지닌 이들의 절대적 사명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틀간의 영성 피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에 참석해 남수단 정부 수반과 만나 “‘평화’는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난 뒤에 사도들에게 처음으로 주신 선물”이라고 강조하며 마찬가지로 “평화는 각 개인의 권리와 한 민족의 전인적 성장을 보장하는 제일 조건”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번 영성 피정의 의미를 강조하며 “평상시와 같은 교황과 정부 수반의 양자회담, 외교회담이나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 대표가 참여하는 교회일치 운동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 그분의 뜻을 식별하는 것이 이번 피정의 목표”라고 말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봉사하고 나라를 운영했는지, 평화와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특히 소외당하고 가장 곤궁에 처한 이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설명하라고 하실 것”이라고 강조하며 국가 지도자로서 자기 운명이 국민들의 안정과 행복에 달려있음을 강조했다.
교황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집을 잃은 이들, 영영 헤어지게 된 가족, 상처와 눈물을 자아낸 분쟁과 폭력으로 인해 끔찍한 고통을 받은 아동, 노인, 여성과 남성 모두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고 강조하며 “가난하고 곤궁에 처한 부르짖음이 하늘까지,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마음에까지 닿고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는 가능한 것”이라며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인 동시에 국민을 책임질 의무를 지닌 이들의 절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