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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는 고기를 잡고, 고기는 주부를 잡는다
  • 전순란
  • 등록 2019-04-17 10: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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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6일 화요일, 맑음



“여보! 수학여행 가던 애들이 탄 배가 진도 앞바다에 빠졌는데 전원 구조됐데.” “그래? 그야 당연하지,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데.” 그 당연 해야 할 일이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5년의 세월은 흘렸다. 물속에서도 아이들은 구조되지 않았고, 뭍에서도 구조하지 않은 이들의 행위에 대한 마땅한 조치 어느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조악의 뿌리는 깊고 넓어 제거하는데 너무 힘들다. ‘그래도 잊지 않고 눈을 퍼렇게 뜨고 있는 우리가 있는 한 꼭 해결을 볼 것이다. 너희들 꼭 알아두어라!’ 


적어도 가톨릭교회는 오늘 전국의 교구에서 추모미사를 드리고 진상규명을 다짐하고 있지만, 정작 가톨릭신자 정치인들(한나라당)은 사뭇 다르다. 차명진 전 의원(여호수아):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처먹는다. 귀하디 귀한 사회적 눈물 비용을 개인용으로 다 쌈 싸먹었다. 지구를 떠나라. 지겹다.” 정진석 의원(사비오): “세월호 그만 좀 우려 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 안상수 의원(베드로): “맞아요, 불쌍한 아이들 욕보이는 짓들이죠.” 김문수(모세): “시체장사 그만하라.”


아침 7시 20분 엠마오 연수원 미사가 있다. 각 교구에서 안식년을 갖는 신부님들은 의무적으로 3개월간 주교회의에서 만든 이 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아야 하기에, 보스코도 이번에 하루 2시간 반씩 이틀간 사제들에게 강연을 하러 온 참이다.



아침엔 모두가 함께 모여 미사 드리는 일로 시작하여 오전엔 주로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며 오후엔 자유시간을 갖는단다. 늘 열심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 왔고 진리에 가까이 살아온 분들이기에 공부라면 진저리치는 중년 아재들과는 다르다. 아침을 먹고 보스코가 신부님들과 공부를 시작하자, ‘이미 모든 공부를 끝낸’ 나는 이웃에 빵고가 살던 숨비소리로 찾아가 기웃거렸다. 


오신부님이 마당잔디를 잘 키워 놓았고 텃밭에는 고추, 가지, 오이, 상추, 샐러리 등을 잔뜩 심었는데 그것들이 잘라올랐을 때의 거리나 간격은 전혀 생각지 않았고, 얼만큼 심으면 누가 얼만큼 먹을 꺼라는 계산이 없는 농사여서 15년 전 내가 휴천재 농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진배없었다. 오이는 40cm 간격으로 심고, 덩굴이 올라가게 한다든가, 여섯 식구에 가지는 다섯 포기면 충분한데 한 30포기씩을 모 붓듯이 심었고, 샐러리도 한 밭 가득 심은 데다 누가 먹을까 궁금하다. 내가 대책 없이 농사짓던 소싯적 모습 그대로다. 이제는 고추 10포기, 땡초 5포기, 가지 4포기, 여섯 6포기, 토마토 5포기… 이 정도 심어도 다 먹지 못하는 걸 잘 알게 됐다.




‘젊음의 집’ 수녀님댁에 갔다. 한라초교 5학년 학생 350명이 막 퇴소하고, 다른 초교에서 130명이 들어와 수녀님들이 정신이 없다. 살레시오 수녀님들이 지도하는 ‘청소년수련원’은 이 제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원장 안젤라 수녀님만 그대로고 다른 수녀님들은 모두 소임을 새로 와서 낯선 얼굴이지만, 어느 곳이든 뿌리를 내리지 않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며 순명하고 사는 수도자들의 삶이 ‘이승에서 우리가 마음 둘 곳은 주님밖에 없다’는 걸 일러준다.


점심을 먹고나서 그동안 여러 종류의 밀감을 휴천재로 보내준 서귀포 ‘천혜향 아줌마’를 잠깐 만나 보았다. 바다가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 가득한 밀감나무는 추수가 거의 끝났고 몇 그루 남은 노지의 천혜향으로 올 농사가 마무리 되어 간다고 일러준다. 까맣게 탄 얼굴, 거친 손으로 보아, 지리산속 아짐이나 탐라도 바닷가 아짐이나 척박한 여인의 삶으로 일맥상통한다.




성산에 있는 ‘빛의 벙커’를 보스코에게 보여주려고 갔다. 작년 11월 16일부터 올 10월 27일 까지는 클림트의 작품으로 빛의 향연과 장중한 음악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는데 그 다음에는 고호나 미켈란젤로 등 화가의 작품으로 선을 보인다니 다음에도 다시 방문해 볼 맘이다.


6시에 연수원으로 돌아오니 저녁상에 신부님들이 추자도에서 낚시한 뽈락 조림으로 근사한 저녁상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손주가 레만호에서 잡은 월척 농어도 멋진 요리가 되었단다. 어부는 고기를 잡고, 고기는 주부를 잡는다. 뽈락처럼 가시가 드센 생선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고생한 여인들의 손길이 있어 우리는 행복 할 수 있다.


밤에는 숨비소리에 다시 가서 원장 오신부님이랑 이현진 신부님을 만나 담소를 나누었다. 빵고신부는 떠났지만 그 자리는 좋은 수사신부님으로 다시 채워졌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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