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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직무, 공동체적 경제를 위한 교회의 제도
  • 이기우
  • 등록 2019-05-03 14: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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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토요일 : 사도 6,1-7; 요한 6,16-21


▲ ⓒ 문미정


인류는 지금까지 문명을 이룩하면서 하느님께서 자연과 생명을 창조하신 업적에 버금가는 찬란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바이러스를 연구하여 고질적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발명하기도 했고, 식물과 동물을 연구해서 종의 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기도 했으며, 교통과 통신 수단을 비약적으로 발달시켰고, 달과 태양계는 물론 우주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려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업적이 전부 물질적인 차원의 진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예제도와 인신매매, 고문과 폭력 그리고 전쟁을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법률적으로는 금지시켰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그로 인한 죄와 고통이 남아있는가 하면,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제도와 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어 가고 양극화된 격차가 벌어져서 인류가 이룩한 놀라운 문명의 혜택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고르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물질문명 수준이 지금보다 낮았던 과거보다 행복감은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중세 봉건시대의 왕이나 귀족에 못지않은 물질적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전혀 행복하게 느끼지도 못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우러나오지 않습니다. 상대적 박탈감 탓입니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의 독서에서 들으신 바대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교회는 공동체적인 소유양식으로 역사 안에 발생한 존재입니다. 자기 것을 자기 소유로 주장하지 않고 공동의 몫으로 내놓음으로써 공동으로 사용하게 하는 이 공동의 소유 양식은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도 아직까지 문명이 도달하지 못한 혁명적인 창안입니다. 


하지만 이 공동 소유의 존재양식은 늘 인간의 욕망과 싸워야 합니다. 더 가지려는 욕망, 덜 주려는 욕망과 싸워야 하는 긴장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성령께 기도하고나서 부제직무를 신설했습니다. 부제직은 경제적인 공동체 구조를 담보하기 위한 성령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 부제직무는 온전히 그 성서적인 소명을 다 실현하지 못하고 사제직을 위한 준비과정 정도로만 격하되어 남아 있습니다. 부제직의 이러한 현실 자체가 우리 교회가 경제 현실에서 읽고 식별해야 하는 성령의 이끄심을 얼마나 알아듣고 있는지에 대한 현주소입니다.


현대를 준비하는 근세 말기에서부터 가톨릭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하여 물질과 경제 문제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점진적으로 선포해 왔습니다. 레오 13세, 비오 11세, 요한 23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를 거쳐 현 교황 프란치스코는 물질 만능 사조를 부채질하고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구조화시키며 결과적으로 인간을 하느님께로부터 소외시키고 마는 자본주의 체제의 우상숭배적 면모를 부각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집트를 탈출시키신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던 옛 하느님 백성의 과오만큼이나 중대한 현대 물질문명의 치명적 과오를 지적함으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시 한 번 교회의 파스카적 사명을 일깨웠습니다. 그 기념비적인 문헌이 교황직에 오르자마자 반포한 「복음의 기쁨」입니다.


새로운 파스카는 워낙 자본주의에 물들어있는 세상의 풍조 속에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만큼이나 기적적인 전망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의 풍랑이 높게 일어서 배가 뒤집힐뻔한 위기에 처한 제자들을 구하시러 급하게 물 위를 걸어서라도 오셨습니다.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적 능력은 바람과 풍랑을 다스리실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빵을 많게 하는 능력만큼이나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 교회가 성체성사를 통하여 이룩해야 하는 거룩한 변화의 역사적 소명 또한 그러합니다.


공동체적인 관계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경향과 맞서야 하지만, 특히 경제적으로도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 욕심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면서도 복음적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요청을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물 위를 걷고 바람과 풍랑을 헤쳐야 하는 과제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부제직을 만들어놓고서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다던 사도들의 태도를 두고, 교회가 경제적 현실을 외면해도 좋다는 식으로 알아들어서는 곤란합니다. 오히려 부제직무의 역사적 배경을 계승하기 위해 교회 전체와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경제를 복음화 시키기 위한 과업을 부여받은 것으로 알아들어야 하고, 행여나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물들지 않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선포하려는 태도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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