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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 이기우
  • 등록 2019-05-22 18:09:24
  • 수정 2019-05-22 1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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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 수요일 : 사도 15,1-6; 요한 15,1-8


▲ ⓒ 가톨릭프레스 자료 사진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하느님은 농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당신의 관계를 근거로 당신을 믿는 이들도 당신과의 관계를 설정하셨습니다. 즉, 당신은 참포도나무요 하느님은 농부이시며, 믿는 이들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은 물론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리고 불에 던져 태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이방인들이 사는 소아시아 지역으로 파견했던 초대 교회가 믿음을 받아들이고 입교하려는 이방인들에게도 사도들이 그러했듯이 할례를 요구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에 휩싸였음을 보도합니다. 사도들을 파견할 때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서 했던 것처럼 역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식별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할례란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표시입니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율법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의 증표가 할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도들도 모두 유다인 이었기 때문에 할례를 받았고, 율법의 정신적 울타리 안에서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이라는 전통 없이는 하느님을 알 수도 없었고 믿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겠다고 약속하는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배워서 십계명을 지키는 생활을 하면서 거기에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까지 믿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해방의 길이었던 율법이 속박의 굴레가 되었을 때


하지만 이미 위생적인 이유를 넘어서 율법을 준수하겠다는 종교적 통과의례가 되어 버린 할례를 이방인들에게도 요구하겠다는 생각은 율법의 폐해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어서 이방인 선교를 개척했던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는 그간의 선교 성과를 허물어뜨릴 수도 있는 일로 보였습니다. 


사실 할례를 받은 유다인들도 율법을 제대로 지킬 수 없을 만큼, 본시 열 가지 계명으로 시작된 율법은 6백 가지가 넘은 규정으로 복잡하고 방대한 규모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원래는 해방의 길이었던 율법이 속박의 굴레가 되어 버린 이 현실에서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를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입장이 이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율법에 열성적이었다가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 들기까지 했던 바오로로서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겠다는 것은 이방인 선교를 하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이 들렸을 것입니다.


급기야 이 할례 문제는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고 자칫 분열될 뻔한 위기까지 초래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야고보와 베드로가 중재안으로 내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이방인 입교자들에게 할례를 받는 대신에 요구한 조건은 우상 숭배를 하지 말 것과 가난한 이들을 기억할 것, 단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말 것, 가난한 이들을 기억할 것 


초대 교회가 겪은 이 할례 논쟁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하느님을 섬겨야겠다는 조건, 특히 현대판 우상인 자본과 돈을 섬기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을까요? 또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겠다는 서약은 어떻습니까?


과거에 비상 세례를 주는 조건은 4대 교리를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천주 존재, 성자강생, 삼위일체 그리고 상선벌악으로써 믿을 교리와 지킬 계명을 압축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4대 교리가 과연 비상 세례에 적당한 조건이었을까요? 혹시 가톨릭 신자가 되려는 예비자에게 성체성사의 배경과 목적인 파스카의 뜻을 알려주고, 이를 위한 십자가로서의 섬김에 대해 알려주며, 섬김의 표현으로써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으로 요약하면 어떨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포도나무요 하느님을 농부로 가르치신 오늘 복음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여야 합니다. 그 열매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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