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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종교 죽은 종교 4 (이광수)
  • 이광수
  • 등록 2015-06-22 10: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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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씨의 표절 사건의 여파가 좀체로 가라앉지 않는다. 적어도 SNS 상에서는 부패 종합선물세트라는 비판을 받은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문제 제기도 누르고, 이제는 메르스에 대해 무대책, 무방비로 많은 국민의 질타를 받은 현 정부의 실정도 눌러버린 상황이다. 


무엇이 이토록 그들을 그 표절 사건에 매달리게 한 것일까? 그들은 왜 지금까지 많이 드러난 교수들이나 강남의 어느 목사와 어느 대학교 총장이 되려하는 어떤 중의 논문 표절의 경우보다 더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분노한 것일까? 


▲ ⓒ 동대신문 박송연 기자


많은 사람들은 모든 소설가를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소설가에 대해 영혼이 살아있는, 물질과 돈의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살아있는 사람으로 본다. 


이 시대가 외면하는 주위의 작은이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대변하고,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풍경이 아닌 나만이 보는 풍경을 드러내주고, 밝힐 수 없는 힘든 부분을 고독과 좌절을 이겨내면서 밝혀주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본다. 


그들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 속에서 생각해 온 목사나 신부 혹은 중의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그들은 강남의 기독교인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가난하면서 권력과 거리가 먼 채 시대와 불화를 한 사람으로 많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온 이 시대의 사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소설가 신경숙은 이들과는 달랐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어느덧 문단에서 권력까지 행사한 사람이었다. 오래 전부터 표절에 대한 시비가 있었으나 문제 제기는 순식간에 깔아뭉개져버렸다. 


분노는 작지만 포도알처럼 여물고 단단하게 자라고 있었다. 처음 문제 제기가 있었을 때, 당사자와 창비사는 그에 대한 배신과 분노의 심정이 얼마나 깊은 곳에서부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뱉었던 언어는 소설가나 문인들이 뱉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고, 정치인들이 뱉었던 언어, 강남의 목사와 중들이 내뱉던 그런 언어였다. 사람들은 어느덧 소설가와 문단에 대해 정치인, 교수, 목사, 중들에 비해 훨씬 더 큰 양심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한 순간 짓밟혀버렸다.


분노는 이 지점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스승을 상실한 더러운 세상에 우리가 서 있다라는 점이다. 대학도 죽고, 교회도 죽고, 성당도 죽고, 절도 죽고... 사람들이 존경하고 의지하며 가르침을 받고 싶어 찾아가서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곳이 없다는 데 있다. 


소위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돈과 권력과 여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과 몸에서 하는 짓은 정치인보다 더 구역질나는 세상이 미치도록 외롭다는 사실이다. 


남자가 바람을 피워 사랑했던 여자와 헤어질 수밖에 없을 때, ‘미안해 마음이 변했어, 그래도 널 사랑했어. 널 보낼 수가 없는데...’라고 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말이 진심으로 전달되었어야 했다. 아니다, 어쩌면 신경숙과 창비는 너무나 순수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한 적이 없는 여인에게, 그냥 돈과 몸이 좋아서 같이 있었을 뿐인 그 여인에게, 사랑했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은 그나마 남아 있는 소설가와 문인의 마지막 양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정신적 스승을 기대했던 많은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그렇지만 우리가 스승으로 삼을 만한 문인들, 가난과 양심으로 살아 온 이 시대의 문인들은 아직은 많이 있다. 교회와 성당과 절 그리고 대학에 보낼 수 없는 사랑과 존경을 그들에게 보내야 하는 일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이광수 : 인도 델리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 석사 및 역사학박사이며, 현재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이자 사진비평가이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슬픈 붓다》,《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사진 인문학》, 《붓다와 카메라》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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