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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제’로 산다는 것, ‘여성’에 갇히지 않고 ‘사제’로 살아가기 - [인터뷰] 대한성공회 민숙희 사제, “예수님은 비주류와 연대하셨다”
  • 문미정, 염은경
  • moon@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5-24 17:21:38
  • 수정 2019-05-24 17: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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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성공회 광명교회에서 만난 민숙희 사제 ⓒ 문미정


‘여성사제가 왜 필요하냐’는 질문 자체가 낯설 때가 됐죠. 이제는 거꾸로 ‘왜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지 않느냐’고 질문해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의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주변 건물들과 어우러져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대한성공회 광명교회가 나왔다. 교회에 들어서자 로만칼라를 한 사제가 나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민숙희 사제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올해로 14년이 된 여성사제에게 ‘사제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들어보았다. 


사모님 대신에 여성 성직의 길로 


“4대째 성공회 교인 집안이에요. 엄마는 제가 ‘사모님’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어머니는 사모님이 되면 부자는 못돼도 남편에게 매를 맞지는 않을 것이고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민숙희 사제가 처음부터 성직자가 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음악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딸이 성직자와 결혼해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편하고 안락하게 살기를 바랐다. 어머니 눈에는 우리 사회에서 여자로 살기엔 사모님이 좋아보였던 모양이다. 


그는 1988년도에 성공회대 신학과에 진학했다. 신학 공부를 하면서 외국의 여성 성직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할 수 있겠구나!’ 그때부터 여성신학도는 생각지도 못했던 여성사제를 꿈꿨다.


지금은 정규 신학대학원이 있지만 당시에는 교단에서 인정하는 대학원 과정으로 사목신학연구원이 있었다. 그곳에 선배 언니 두 명이 다니고 있었고 함께 에큐메니칼 여신학생 모임에 나가면서 여성 성직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주교 추천을 받지 못해서 신학대학원 입학이 미뤄지던 중, 당시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던 이재정 현재 경기도 교육감의 권유로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일을 하게 됐다. 민 사제는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와 함께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 활동으로 윤금이 사건과 한국 성매매 여성을 다시 보게 됐다. 


성매매 여성들과 그들을 위해 활동하는 여성 목사들을 보면서 ‘이건 여성 성직자가 해야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더 적극적으로 성직자가 될 생각을 했다. 민 사제는 성매매 여성 선교 활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석사학위 논문을 쓰기도 했다. 


어려운 순간마다 기회가 징검다리처럼 펼쳐졌다 


1997년이 되자 주교 추천 없이도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민 사제는 바로 대학원에 입학할 수 없었다. 당시 서울교구에서는 여성이 성직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갔던 전례가 없던 터라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기다림 끝에 이듬해인 1998년도에 민 사제를 포함해 세 명의 여성이 입학했다. 그러나 여성 신학생들이 입학하자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없었던 ‘성직후보자고시’가 새롭게 생긴 것이다.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는 건 이미 성직후보자인건데 ‘성직후보자고시’를 새로 만든 거예요. 게다가 남자들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고 여자들은 시험조차 볼 수 없었어요.”


부당한 제도에 동기들은 다 함께 시험을 보지 않기로 결의하고, 시험 당일 남자 동기들은 시험지를 받자마자 모두 시험지를 엎어두고 시험장을 나오기도 했다. 


민숙희 사제는 나중에 기회가 주어진 성직후보자고시에 낙방해 전도사 발령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 동기가 졸업을 못하게 되어 대신 발령의 기회를 얻게 됐다. 하지만 여성 전도사를 교회에 발령 낸 사례가 없었기에 전도사 요청을 한 교회에서는 여성 전도사를 부담스러워했다. 


이때, ‘여자가 뭐 어떻냐’며 민 사제를 흔쾌히 전도사로 받아들인 이가 있었다. 바로 고영돈 사제다. 고영돈 사제는 부제품을 받고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있던 민 사제를 자신이 있는 교회로 부르기도 했는데 그곳이 현재 민 사제가 관할사제로 있는 광명교회다. 인연은 참 묘하게 이어진다. 


▲ ⓒ 문미정


대학원에 입학할 때는 민 사제가 다니던 인천 내동교회의 고 조금환 사제가 교인들을 어렵게 설득해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돌아보면 어려운 순간마다 민숙희 사제 앞에 여러 기회가 징검다리처럼 펼쳐졌다. 민 사제는 징검다리가 되어준 은인들을 기억하며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을 가능하게 해줬던 고마운 분들”이라고 소개했다. 


20년이 넘는 기다림… “끝까지 있었기 때문” 


성공회 최초의 여성 사제는 1944년 사제 서품을 받은 홍콩-마카오 교구 리 팀 오이 사제다. 1974년에는 미국 성공회에서 11명의 여성들이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90년대 초 영국 성공회도 여성 사제를 서품했다.  


2001년 대한성공회에서도 첫 여성 사제가 탄생했다. 부산교구 민병옥 사제다. 첫 여성사제가 탄생하기 전까지 숱한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고 역사의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민숙희 사제는 과거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활동하던 당시 사람들과 함께 주교관에서 ‘여성 성직을 허락하라’는 기습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대한성공회는 성공회대 개교기념일에 맞춰 성소주일 연합 감사성찬례를 드리는데,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는 성소주일에 동기들과 함께 여성 성직을 바라는 신자들의 서명을 받아 주교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당초 500명을 예상했지만 하루 동안 1,0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서명을 했는데, 아마도 서명을 할 때는 ‘여성 성직이 꼭 필요해’라기 보다는 ‘뭐 안 될 것도 없지’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설마 우리 교회에는 안 오겠지’ 이런 마음도 포함해서요. (웃음)”


오래전부터 여성 성직에 대한 논의는 있어왔다. 1998년 여성 사제 서품 여론이 형성되면서 고 김진만 성공회대 교수는 여성 성직을 실현할 시대가 됐다며, 여성 성직을 바라는 평신도들을 모아 ‘여성성직후원회’를 발족했다. 


또한 민병옥 사제가 속해있던 부산교구 주교가 여성 성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주교로 바뀌면서 여성 사제 서품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1978년 사목신학연구원을 졸업한 민병옥 사제는 주로 어머니회 간사로 일하면서 20년이 넘는 기다림 끝에 2001년 사제 서품을 받게 된다.


민숙희 사제는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있었기 때문”이라며, 민병옥 사제 역시 성공회를 사랑하고 막달라 마리아처럼 끝까지 있었기 때문에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사제 서품, 교회가 비주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것 


교회에 여성 사제가 왜 필요한지 묻자, 민숙희 사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성사제가 왜 필요하냐’는 질문 자체가 낯설 때가 됐죠. 이제는 거꾸로 ‘왜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지 않느냐’고 질문해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사제가 서품됐다는 것은 교회가 약자를 향한 하느님의 기대와 희망에 부응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주류라고 하지 않았던 성소수자나 난민,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백성을 받아들일 준비와 자세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여성사제서품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지난 16일 강남역 여성혐오 범죄 3주기 연합예배에서 민숙희 사제 ⓒ 문미정


여성 사제로서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했다. 그는 교회에서 주류가 아닌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고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발효액을 직접 담가서 판매하기도 했다. 이렇게 마련된 예산으로 시골 여성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랑스 자수, 민화, 도예 등 여러 강좌를 열었고 반응도 매우 좋았다.     


앞으로 여성신학 강좌와 여성들이 신앙의 주체로 바로 설 수 있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우리 사회에 혐오와 차별, 평등에 대한 경종을 수차례 울리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교회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졌다. 민숙희 사제는 성평등한 교회를 위해서는 우선 교육이 필요하다고 봤다. 


“교회성폭력예방교육과 성평등교육이 필요해요. 교육받는 사람들 중에는 공동체에서 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교육 받으면 이전과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거예요. 교육이 시작되면 정책적으로도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숙희 사제는 대한성공회 여성국장으로서 지난해 성직자와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교회성폭력예방교육을 진행했으며 그동안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성직자와 신자 사역자들 필수 교육에 포함되도록 꾸준히 건의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목소리가 교회 정책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돼야 한다. 세계성공회협의회에서 각 관구에 여성 데스크 설치를 권고하면서, 대한성공회에 양성평등국(현 여성국)이 신설됐다. 성공회 여성선교센터장이 사비를 들여 양성평등국을 운영해오다가 민 사제에게 국장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면서 3년 동안 양성평등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아쉽게도 양성평등국에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민 사제는 양성평등국 활동을 하기 위해 ‘민숙희 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여전히 센터장도 사비를 들여 양성평등국 활동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성직자원 총회에서는 서울교구 여성 상임위원회 관련 안건이 3표 차이로 부결되기도 했다. 이에 여성 성직자들이 한데 모여, 여성 성직자가 정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상임위원에 선출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그 결과 민숙희 사제는 2016년 서울교구 상임위원회 첫 번째 여성 상임위원으로 선출됐다. 


현재는 상임위원회, 교육위원회에 여성 의석을 30%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상임위원회의 평신도상임위원 중 여성 의석은 30%다. 


오는 9월 ‘여성성직후원회’ 재발족


1998년 ‘여성성직후원회’가 여성 사제 서품을 위해 발족했다면, 이번에는 대한성공회 여성 사제 수품 20주년 준비와 여성 성직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올 9월 ‘여성성직후원회’를 재발족한다. 


“서품 받은 것에만 만족할 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를 지지하고 기도해줬던 분들에게 보답도 하고 그분들과 연대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 스스로 파송해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숙희 사제는 여성 사제들이 하려는 사업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줄 수 있는 분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여성국장을 맡고 있는 김희영 사제는 비블리오 드라마를 하면서 치유활동을 하고 있고, 다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성공회 소속 여성 사제는 수녀 사제를 포함해 18명이다. 여성의 영성으로 하는 피정 프로그램, 신학강좌 등을 기획하고 있으며 여성의 눈으로 다양한 사목활동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 


이제 ‘여성’을 넘어 ‘한 사제’로서… 


▲ ⓒ 문미정


민숙희 사제는 자신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여성들, 비주류를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 다른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여성 사제의 길을 앞서 걷는 입장에서 부담감이 크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지자, 민 사제는 잠시 침묵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성공해야 사람들이 여성사제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할거라는 부담감이 자신을 괴롭혔다고 입을 열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참아야 하고,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하고, 남자보다 잘해야 된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후배들을 평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책임감과 부담감이 더 그를 힘들게 한 듯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니 후배들이 저보다 능력도 있고 훨씬 잘하는데 ‘내가 이 짐을 계속 안고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여성사제도 괜찮네’라고 인정받기 위한 단계를 거쳐 왔다면, 이제는 여성 사제 민숙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하느님이 제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개발하고 싶어요”


민숙희 사제는 앞으로 성소수자가 교회에 편하게 와서 교리교사도 하고, 애찬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또, 반려동물 축복식을 이 교회에서도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모든 피조물들이 차별 없이 예배공동체에 참석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 광명교회 내부 ⓒ 문미정


“예수님은 주류와 관계를 끊으시고 비주류와 연대하셨어요.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의 성직자라면 그걸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많은 교인과 사제들은 주류와 손잡고 그 안에서 인정받으려고 해요. 


비주류를 소외시키고 우리끼리 신앙생활을 한다는 건 신앙생활을 안전하게 하고 싶다는 거예요. 누군가 들어왔을 때 거부감이 들 수 있는 공동체인거죠. 그건 제대로 된 공동체가 아니라고 봐요. 


만약 제도권에 있는 교회에서 비주류를 받아들일 수 없는 현상이 계속 된다면, 저는 주류 교회를 떠날 각오도 하고 있어요. 물론 여기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볼 거예요.”


마지막으로, 민숙희 사제는 “신앙이 불균형하면 영성도 불균형해진다”며 “모든 기독교 교회 안에 여성 성직자들이 나와서 성평등한 교회를 이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울고 있지만 내색하지 못하는 많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난민 같은 비주류를 여성사제를 통해 예수와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숙희 사제 자신이 어려움을 겪어봤기에 사회와 교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향한 그의 관심과 시선은 따뜻했다.


‘여성성직후원회’ 재발족식에 앞서, 여성 성직자로서 소명도 다시 확인하고 어떻게 더 넓은 길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기도하는 여성 성직자 피정을 가질 예정이다. 마침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성공회 여성 사제 두 명과 서울주교좌교회의 전·현직 여성교회위원들의 도움을 받아 오키나와로 피정을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성 사제’라는 틀을 넘어 이제 온전히 ‘한 사제’로서의 영성과 삶을 고민하는 민숙희 사제와 그 동료 사제들이 힘차게 새로운 도전에 나서길 응원한다. 


자녀가 있는 여성 사제들은 신학 연수나 피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여성성직후원회’ 재발족식에 앞선 이번 피정은 아이들도 함께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최소 이동경비만 회비로 받고 나머지는 후원을 받을 예정이다. 이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이들은 <농협 211033-52-039054 민숙희>로 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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