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9일, 성령강림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그리스도교가 삶이 되게 해주는 성령에서 비롯되는 진정한 평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제자들은 자신을 가로 막는 이들 앞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었다”며 “처음에는 자기 목숨을 구제하기에 급급했지만, 이제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의 고생을 덜어주거나, 문제와 적들에게서 떼어 놓거나, 화려한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제자들 삶에 없었던 조화를 가져다 준 것.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령을 통해 변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부활한 것처럼 살지 않는다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 19-21)라고 말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평화란,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제자들에게 주어진 평화란 이들을 문제로부터 직접 해방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안에서 (이들의 마음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평화는, 우리 마음이 밖에서는 파도가 칠지언정 언제나 고요한 심해와 같이 만들어준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을 찾는 대신, ‘이런 불행이 지나가고, 저런 사람을 만나지 않고, 이런 상황이 좋아지면 모든 게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서 “이는 표면에만 머무는 것이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찾아오고 불안이 되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처럼 인간 마음에 조화를 가져다주는 성령은 “광기에는 질서를, 불안에는 평화를, 절망에는 신뢰를, 슬픔에는 기쁨을, 나이듦에는 젊음을, 시련에는 용기를 가져다 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령은 인간 내적 조화뿐 아니라 “인간 사이의 조화”를 가져다 준다고도 말했다.
성령이 우리를 교회로 만들어주고, 서로 다른 조각들을 모아 조화로운 하나의 건물로 만들어준다. 성령은 이러한 다양성에서부터 일치를 세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에서는 “의견의 불일치가 아예 분열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면서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사람이 있고, 100년을 살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태어나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수많은 소셜 네트워크(사회관계망)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 동떨어져있다”며 “사람들은 더욱 ‘소셜’해졌지만, 정작 사회와는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여기서 “자기가 동조하지 않는 의견에 가장 먼저 비난으로 대응하는 비난의 문화”가 생겨났다며 “악을 악으로 갚고, 희생자에서 (힘을 가진) 사형집행인이 된다고 해서 잘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적인 사람은 악을 선으로 갚고 오만에는 온화로, 악의에는 선의로, 소란에는 침묵으로, 수다에는 기도로, 비관에는 미소로 답한다.
교황은 “성령이 없는 교회는 조직에 불과하고, 성령이 없는 교회의 사명은 프로파간다”라며 이러한 방식의 사목과 선교는 “우리가 일치하는 성령의 길이 아닌 분열의 길”이라고 말했다.
성령강림대축일 : 오순절, 고대 이스라엘의 축제 가운데 하나로 팔레스티나에서 밀 수확기 끝 무렵에 거행했던 추수 감사절. 누룩 없는 빵을 바치는 무교절과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누룩 있는 빵을 봉헌한다. 한편 그리스도교에서 오순절은 현재 성령 강림 대축일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천주교 용어자료집)
프로파간다 : propaganda는 '선전'이다. 원래는 로마 가톨릭에서 포교를 전담하는 추기경들의 위원회(1622년 구성)를 가리킨 말로, 영어에선 1790년대부터 '선전'의 의미로 쓰였다. 처음에는 중립적인 의미로 쓰였으나, 20세기에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거짓과 선동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교양영어사전2, 2013, 강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