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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로 되어 있다는 미륵은 이미 와 있습니다” - [이신부의 세·빛] 의로움과 하늘나라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6-13 15:27:56
  • 수정 2019-06-13 15: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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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 2코린 3,15-4,1.4-6; 마태 5,20ㄴ-26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새 차원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를 기념하는 오늘, 복음에서는 산상설교의 가르침 중에서 옛 율법의 십계명을 사랑의 계명으로 재해석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화해하라는 계명으로 대치하는 내용입니다. 살인금지가 화해로 나아가는 방향은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새 차원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금지령에서 적극적인 행동강령으로 차원을 높여 의로움을 규정하는 것이고, 인간관계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사두가이들은 물론 바리사이들과 예수님 사이에는 하늘나라의 가르침에 있어서 경합관계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속죄의 제사를 바쳐야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고, 바리사이들은 한 술 더 떠서 율법을 배워 잘 준수해야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세력의 종교적 지배력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씻어주기는커녕 사악하고 착취적인 제사제도로 말미암아 죄인을 만들고 있는 사두가이들의 성전 정치에 절망하고 있었고, 이에 더하여 무지와 우상숭배와 죄악에서 해방시켜주기는커녕 복잡해진 율법을 몰라서도 또 잘 지키지 못해서도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심하게 주눅 들어 있었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새로운 길


이렇듯 문화적으로나 심리적인 계엄령 상태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연상시키는 복장에 거친 음식을 먹으며 엘리야의 예언자적 권위로 대중에게 호소했고, 성전이나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단 한 번의 회개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선언했으며 그 표시가 물로 씻는 세례였습니다. 요한의 세례운동이 선풍적이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두가이와 바리사이가 자초한 종교적 억압기제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요한의 제자들 중 일부를 제자로 받아들여 유랑하며 설교여행을 시작하신 예수님도 당시 지도층과 대중에게는 요한의 동조세력으로 비추어졌습니다. 헤로데 영주가 요한을 참수한 후에는 부활한 요한이라고 여길 정도로 예수님의 영향력은 요한의 혁명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들, 특히 바리사이파의 율법 학자들은 하늘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파격적인 행보를 ‘바보!’라든가, ‘멍청이!’라는 말로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그에 대한 반격이자 메아리입니다. 이렇게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은 하늘나라가 아니라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의 터무니없는 비난과 비방에 휘둘리지 말라는 방어의 메시지라고도할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새로운 길로서 제시된 이 가르침은 살인을 금지하는 옛 십계명의 제5계명보다 훨씬 더 어려우면 어렵지 결코 쉽지 않은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화해하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사랑하는 의로움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저 살인하지 않는 정도의 의로움만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하여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을 누릴 만한 실천행동과 그로 인한 인간관계의 중요성이 이보다 더 강조되어 있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당시 민중에게 준 실질적인 영향은 성전이나 율법을 거치지 않고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해방과 혁명의 메시지였습니다. 당시에 구원에 이르는 길로 독점적 지위를 장악하고 있었던 성전의 제사나 율법적 구속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했습니다. 


개벽되어야 할 후천은 그 연월일시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오기로 되어 있다고 전해지는 미륵은 이미 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이 하늘나라 사상이 이 땅에서 사상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해방과 혁명의 메시지가 된 족보를 추적해보면 이러합니다. 다산 정약용으로부터 이 사상을 전해들은 최제우가 ‘시천주’(侍天主)의 개념으로 동학을 창시하고 주역(周易)의 개념을 빌어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풀이하자, 동학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증산교의 강일산이나, 거의 동일한 시대의식을 수용한 원불교의 소태산 박중빈 등이 모두 이를 수용합니다. ‘하늘나라’ 사상은 이를 현실적으로 구현할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상으로 구체화될 수밖에 없는데, 원시 불교 내지 정통 불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미륵 사상이 조선 후기에 들어온 것도 이러한 후천개벽 사상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입니다. 그러니까 후천개벽 사상과 미륵 사상은 하늘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 땅에 들어와서 당시 민중의 혁명적 시대의식의 요청으로 토착화된 사상적 주체성의 발로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파된 다른 어떤 문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후천개벽 사상이나 미륵 사상도 별다른 사상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성 종교를 통하지 않고도 행복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하느님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굳이 종교생활의 구속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톨릭교회는 다른 종파나 다른 교파와만 경합 관계에 놓인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인 종교성향과도 경합해야 하는 지경에 놓인 셈입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비추이는 빛을 찾아가기 위해서라면, 종교가 하느님을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종교만이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종교를 통하지 않고서도 아름다고 의롭게 살아가려는 이들의 삶을 통해서도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해답의 최소한은 적어도 서로가 화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의미 있는 공동체적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리고 그 공동체가 사교적이거나 친목적인 수준과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 등의 조건이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올바른 역사의식을 반영할 수 있는 인간관계라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일찍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늘나라의 가르침을 후천개벽과 미륵의 사상으로 토착화시켜 전해준 이 땅의 사상적 선학(先學)들에게 정신적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벽되어야 할 후천은 그 연월일시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오기로 되어 있다고 전해지는 미륵은 이미 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는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가르침으로 열어젖히셨고, 메시아이신 그분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고 계시기 때문에 그 하늘나라를 이 땅에서도 펼쳐 보이고 사람들을 하느님 닮은 존재로 보는 눈을 지닌 미륵은 바로 그분을 메시아로 믿는 백성 즉, 나와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하늘이 열리고 있는 때요 주님의 영을 받은 나와 우리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두 가지 현실입니다.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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