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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씨앗으로 심겨져 자란다’ - [휴천재일기] 2019년 6월 20일 목요일, 맑음
  • 전순란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6-21 15:29:02
  • 수정 2019-06-21 15: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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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0일 목요일, 맑음



어제 19일. ‘남편이 탄 비행기(루프탄자)가 갑자기 중국이 자기나라 영공으로 못 지나가게 하는 바람에 출발도 연발을 거듭하다가 일본 하늘을 지나 시베리아로 돌아서 프랑크푸르트에 내렸단다. 항공사에서 마련한 호텔에서 자고 이제야 쮸리히로 간다는 소식을 받았다’는 친구의 문자를 받았다. ‘어처구니없는 중국’이라는 말과 함께 ‘같은 날 두 시에 떠난 빵기는 어찌되었냐?’고 물어도 왔다. 


1980년대 냉전이 극을 이루던 시절에 있었던 서글픈 이야기. 중국 하늘은 물론 못 지나고 모처럼 상공 통과를 허락받은 러시아를 지나도 모든 창문에 검은 막을 치고 아래를 못 내려다보게 하던 기억. 우리 눈이 그 먼 하늘에서 점으로 보이는 건물들을 어찌 훔쳐본단 말인가? 우리 육안이 무슨 특수 적외선전자망원경이라도 된 단 말인가?


그런 의심을 극복한지 30년이나 흘렀는데 중국이 한국발 모든 여객기의 중국영공 통과를 금지시켰을까? 더구나 ‘프랑크프르트 공항에서 루프탄자 항공이 1000명 정도의 승객에게 호텔방을 잡아야 했고 다음날 가는 항공권으로 바꾸느라 긴 줄을 섰다’는 얘기까지 나왔다니 가짜뉴스 같지도 않고…(빵기의 추측은 시진핑의 방북으로 일부 항공편의 항로가 제한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정도에서 그친다.)


큰아들이 걱정되어 카톡을 보냈더니 자기는 중국 상공을 잘 지나서 지금 런던 공항에서 제네바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엄마, 무슨 보이스피싱 같은 얘기에요? 요사이 엄마가 늙어 정신이 허해지셨나본데 제발 정신 줄 놓지 마세요!”라는 꾸지람도 왔다. 우리 ‘6.25둥이’들은 미쏘의 패권주의가 극에 달한 냉전 속에 살아 왔기에 요새처럼 트럼프라는 깡패가 벌이는 국제분쟁을 보면 온 몸이 긴장한다.


6.25때 외할아버지가 납치당하셔서 북한의 어느 탄광에서 돌아가신 걸 경험한 울 엄마의 반공 사상이야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다만 그걸 쓸데없는 남북 간 증오로만 키워 가는 개신교 근본주의 목사들의 언행이나 자한당의 공포분위기 조성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좋아하는 살레시오회 백분도 수사님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떠서 일산병원에 문상을 갔다. 


오래 편찮으시다 86세에 돌아가셨다는데도 사진속의 모습에서 모친은 곱고 단정하셨다.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로, 영별을 고하러 오는 이들에게 고인이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웠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정사진! 흰 국화에 둘러싸여 환하게 웃는 얼굴이 이제부터 영원히 그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에서 사시리라는 희망이 유가족과 문상객들에게 위로가 된다.



매시간 올려지는 영안실 미사(성당에서 장례미사 한 번도 교우들에게는 대단한 특전인데, 살레시오 수도자의 부모는 60여명의 사제가 초상 내내 번갈아 바치는 미사를 누린다!) 중에 황신부님의 강론은 조분조분하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 믿음의 길을 간다. 하나는 자기를 믿고 사는 길.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내 멋대로 사는데, 늘 뭔가 불안해선지 은행에 저축하고 보험을 들고 연금을 붓지만 갑자기 닥쳐오는 죽음 앞에서 그 모든 것이 ‘한 방에 훅 간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을 믿고서 사는 길로 세속의 보장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세상 것에 헛된 믿음을 거두고 그 이상의 것에 의지하며 당당하게 사는 일이다. 죽음은 태어나는 순간 내 안에 심겨진 씨앗 하나. 살아가면서 그 한그루를 삶과 함께 키워간다. 그 나무가 나보다 더 커버리면 우리는 그 나무 밑에 조용히 쉼을 얻는다. 당신이 주신 또 다른 삶이 죽음을 열고 영원으로 나간다. 그러기에 죽음은 이별이 아니라 하느님을 통해 새로이 만나는 시간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상 간 일이 좋았던 것은 작은아들을 한 번 더 보는 것! 관구관에서 당한 상이라선지 빵고신부가 호상 노릇을 하고 있어 오후 두시의 입관예절도 주례하러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자리를 떴다. 


(일산)병원에서 돌아오자 쌍문동 (한일)병원으로 갔다. 지난주에 촬영한 보스코의 MRA 결과를 들으러 담당의사에게 갔다. “(동맥 하나가 접혀 있는 것 말고는) 다른 이상은 없다!” 다행이다. 어떻든 그가 태어날 때 씨앗으로 심겨졌다는 나무가 제법 자라서 그 그늘이 작년부터 유난히 어둡게 드리워지고 있음은 팔순을 내다보는 그의 나이가 보여준다.


작년 말 취침 중의 심한 무호흡으로 양압기를 써야 했고(평생 동안!), 올해 초 그의 잦던 부정맥이 관상동맥의 이상에서 유래함을 발견하고 스턴트를 장착했고(후차적으로 혈관약을 평생 먹어야 하고!), 이 달엔 뇌혈관 이상이 있나 검사를 해야 했고…


보스코가 퇴임할 적에 주변에서 들려주던 얘기들. “한 10년은 건강하게 여가도 즐기고 여행도 하며 노년을 보낼 테지요. 하지만 그 10년이 지나면 이런저런 질병과 탈이 거듭 나면서 병원과 입퇴원을 거듭하면서 약봉지를 입에 달고 살 거요.” 참말이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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