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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은 아직도 ‘한국동란 피난길’ - [휴천재일기] 2019년 6월 25일 화요일 맑음
  • 전순란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6-26 16:07:29
  • 수정 2019-06-26 16: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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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5일 화요일 맑음



“여보, 내일부터 장마가 온다는데 어제 못다 캔 감자는 어쩌죠?” 간단하게 요기하고 새벽에 아예 감자를 캐자는 그의 의견. ‘성나중씨’가 웬일로 ‘나중에’ 캐자는 말을 안 하고? 그답지 않은 멘트에 서둘러 아침 요기를 하고 바구니에 음료를 챙겨 텃밭으로 내려갔다. 드물댁이 씨감자를 심었는데 워낙 듬성듬성 심어서 소출이 작년에 절반밖에 안 된다. 그래도 남의 손으로 지은 농사이니까 할 말은 없다.


‘하지감자’니까 지난 토요일 22일이 거두었어야 할 날. 그날 우리 동네 아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득그득 상자에 감자를 오지게 담아 창고로 옮기고 있었다. 상자 위는 열어 놓은 채 신문지로 덮는다. 한 열흘 지나 상처 났거나 썩은 감자를 골라내고 자연건조로 줄어든 무게를 채워 농협에 내든지 감자로 돈을 산다.



올해는 씨감자가 비싸서 한 상자에 32,000원을 했지만 열두어 상자가 나오면 한 25만원을 한다. 세 달 걸려 번 돈이니 월급으로 치면 7만원. 있는 땅이니까 심고, 컸으니까 거둬들이지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은 아니란다. 유영감님도 옆 논에 앉아 우리 밭의 감자소출이 변변치 않음을 한 눈에 알아보고 한 마디 거든다. “돈만 보고는 농사 못 져야. 그저 곰실거리고 크는 거 보고 영글어서 캐는 재미로 하는 거지. 자석 새끼 같어야! 어디 자석을 돈 땜시 키우나?” 그러니까 농부 마음은 하느님 마음이다.


오늘은 6.25 69주년. 파주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는 한국가톨릭의 모든 주교들이 함께 모여 민족화해와 통일을 기원하여 미사를 올린다. 




지리산 종교연대에서는 산청에 기도 모임을 개최하였다. 미루네 부부, 우리 둘, 봉재 언니가 미루네 차로 단성까지 갔다. 덕천서원에서 행사에 오는 종교연대의 일행을 만나 가까운 산청 외공리 ‘양민학살’ 현장을 찾았다. 


이렇게 긴 세월에도, 그 해에 태어난 사람들이 칠순을 맞는데도 특히 오늘 외공리에서는 아직 가해자도 피해자도 알 수 없는 양민학살 현장을 찾아가야 하다니! 여기 말고도 아마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곳에 이런 일이 무수히 더 있었으리라.




1951년 2월, 설날 직후 이 산골에 280여명의 양민(어린아이, 젊은이, 여자들 포함한 어른들)이 버스로 실려와 깊은 골짜기까지 끌려올라와 대한민국 국군의 칼빈총알이 머리와 등에 박힌 채 죽어 묻혀 있었다! 손을 뒤도 묶인 채(어떤 남자들은 발까지 묶인 채) 무릎을 꿇리고 바로 뒷머리에 총알을 맞고 죽어 묻힌 시신들… 


어떤 엄마는 어린아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죽은 유골이어서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모성애를 목격한 발굴자들은 가해자의 행악성에 치를 떨었단다. 그 가해집단이 지금까지도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라는 집단으로 건재하면서 이 억울한 죽음을 밝히자는 제2차 ‘진실과화해위원회’의 출범조차 방해하고 있다니!



그곳에 모인 모두는 ‘2019년 외공리, 지리산 생명평화 기도’를 한 마음으로 바쳤다.


토벌대 아들과 빨치산 아들을 둔,

지리산 어머니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쟁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을 

짐승이 되도록 내 모는 것입니다. 

부디 이 땅의 국민들이 

전쟁의 광기와 아픔과 상처를 똑똑히 기억하게 하소서.

좌우 이념을 떠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깊은 연민과 지혜를 갖게 하소서. 

온 나라가, 너와 나 모두를 살리는 

해원 상생의 길을 걷게 하소서.


우리는 덕천서원으로 돌아와 이부영선생의 “6.25 69주년 우리는 어디에 서있나?”라는 강연을 들었다. 보스코의 지인 이부영 선생이 자료집에 강연문까지 보내고서도 급한 일로 서울서 못 내려와 사회자가 내용을 간추리고 토론을 가졌다. 사회자는 보스코에게 첫 번 논평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의 “우리 안의 정상회담이 절실하다”는 설법을 들었다. 


6.25마다 되살아 돌아오는 이 아픔이 끝나는 날이 언제나 올 것인가? ‘한국동란’ 그 몇 해에 국군과 경찰에게 학살당한 100만 양민들의 죽음을 어떻게 해원할 것인가? 단성에서 저녁을 먹고 밤늦게 돌아오는 길, 우리 마음은 아직도 ‘한국동란 피난길’에 서 있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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