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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지어낸 갈등으로 고뇌하던 야곱과 오늘의 교회 - [이신부의 세·빛] 야뽁 나루에서 생긴 일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7-09 12:57:06
  • 수정 2019-07-09 12:5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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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화요일 : 창세 32,23-33; 마태 9,32-38



오늘 독서에서는 그동안 20년에 걸쳐 라반 외삼촌의 집에서 일해주면서 두 아내와 두 여종, 열한 아들과 딸 하나 그리고 많은 재산을 장만한 야곱이 귀향하는 길에 야뽁 나루에서 겪은 일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막내아들 벤야민은 이 길에서 얻고 그 후유증으로 둘째 아내 라헬이 숨을 거두기도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많은 자식들과 그보다 더 많은 재산을 얻은 데 대해 뿌듯해 할 수 만은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향으로 가는 길에는 장자권 다툼으로 원수가 되어 버린 형 에사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잔뜩 겁이 난 야곱은 가족들이 먼저 이 나루를 건너게 하고 적지 않은 선물도 형에게 보내면서 홀로 남아 밤을 지새웠습니다. 


기나긴 밤에 야곱은 꿈을 꾸는데, 그 꿈에서 그는 에사우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기도 하며 하느님의 천사이기도 한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 어떤 영과 밤새 씨름을 했습니다. 


그 존재가 형이라면 자기와 가족을 죽이려고 드는 공포의 대상일 것이요, 자기 자신의 또 다른 내면이라면 지난 날 저지른 잘못에 대한 회한의 심리일 것이며, 하느님의 천사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텔에서 받은 축복의 약속대로 자기와 가족을 지켜달라고 간청하는 또 다른 집념일 것이었습니다. 


집념이 강한 야곱은 이 세 가지 속성을 복합적으로 지닌 상대와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밤새 씨름을 하면서 실제로도 엉덩이뼈를 다치기도 했습니다. 뒤척이다가 몸을 잘못 움직인 모양이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에사우에 대한 공포와 자기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한을 극복하고 하느님께서 자기자신을 축복하셨던 약속에 근거하여 다시 한 번 축복을 받아내고서야 꿈을 깹니다. 잘못은 자기가 해 놓고서도 하느님께서 선택하셨다는 그 섭리에 매달려서 하느님의 보호와 축복을 바라는 야곱의 심리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내면을 꼭 빼닮았기로 창세기의 저자는 야곱의 또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었다고 과거형으로 사족을 달았습니다.


야곱의 집념을 흉내낸 이스라엘의 편협한 선민의식은 예수님에 이르러서야 보편적인 영으로 넘어섭니다. 예수님께서는 편협한 선민의식의 상징과도 같은 악령들을 이스라엘 사람들 안에서 몰라내느라 분주하셨습니다. 하도 많이 마귀들을 몰아내시니까 바리사이들은 험담을 했고 끝내 예수님까지도 마귀의 하수인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축복을 온전히 받을만한 처지로 이스라엘을 탈바꿈시키시려고 마귀들도 쫓아내시고 병자들도 고쳐주시며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 본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느라 동분서주하셨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목자 노릇을 하던 자들은 목자가 아니라 삯꾼들이었기에 군중은 기가 꺾이고 뿔뿔이 흩어져 생기를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착한 목자로서 민족을 알고 민족구성원들이 교회를 알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시던 일을 함께 하고 또 뒤를 이어 계승할 일꾼들을 하느님께 청하셨고, 그래서 부르심을 받고 응답한 열두 제자들에 이어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야곱이 야뽁 나루의 꿈에서 겪었던 내면 갈등처럼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소자가 확 줄어들지나 않을까, 80%로까지 늘어난 주일미사 냉담율이 더 늘어나서 성당문을 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서양 나라 교회들이 겪고 있는 것처럼 내리막길로 들어선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워낙 다른 종파나 교파가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는 모양새를 보면서 그래도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니까 좀 더 낫겠지 하는 어부지리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목숨 바쳐 진리를 갈구하던 신앙 선조들의 구도 정신과 박해의 칼날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올곧게 실천하던 교우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야뽁 나루에서 서성이며 스스로 지어낸 온갖 갈등으로 고뇌하던 야곱이 정작 야뽁 나루를 건너자 에사우는 반가이 동생을 맞이한 것만 보아도 그 갈등은 부질없는 것이었던 것처럼, 하느님의 온전한 축복을 받는 길은 야곱의 전철을 밟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마귀들과 맞서고 병자들을 끌어안으며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당당하게 전하는 데 있습니다. 민족의 구성원들 앞에서 착한 목자로서 민족을 알고 민족 구성원들이 교회를 알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바야흐로 민족사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이즈음, 목숨 바쳐 진리를 갈구하던 초기 신앙 선조들의 구도 정신과 박해의 칼날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 진리를 올곧게 실천하던 교우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친일행각과 독재부역과 반공의 그림자는 말끔히 걷어내고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마귀들과 맞서야 할 때입니다. 마귀 들리면 진실의 언어를 말하지 못하고 시대의 징표를 보지 못하며 민중의 외침을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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