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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할 단서 - [이신부의 세·빛] 야곱의 진실과 사도직의 진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7-11 16:27:06
  • 수정 2019-07-11 18: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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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 창세 44,18-21.23ㄴ-29; 45,1-5; 마태 10,7-15


▲ 요셉이 야곱을 이집트 파라오에게 소개하는 장면, 탄원서를 받기 위해 몸을 기울이고 있는 요셉, 요셉이 자신의 아들과 함께 야곱을 보러온 모습, 임종을 앞두고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오늘은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입니다. 독서는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말년의 야곱이 회고하는 바를 유다의 입으로 전해들은 요셉과 형들이 그동안 숨겨온 정체를 밝히고 감격적으로 상봉하는 장면을 전해 주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시어 하늘나라를 선포하게 하시는 파견설교입니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입니다. 요셉을 형제들이 죽이려 들었을 때, 이를 말리면서 이집트로 팔아넘기게 해서 목숨을 부지하게 한 장본인입니다. 요셉과 벤야민을 뺀 열 형제 가운데 그나마 제 정신을 갖추고 있었던 처지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후대의 역사에서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을 벤야민 지파에 속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목숨을 걸고 자기 왕위를 포기하면서까지 지켜주고 우정을 나눔으로써 조상의 은덕을 후손들이 갚은 아름다운 사례도 있습니다.


진실은 야곱에게서 한층 더 진하게 드러납니다. 유다의 전언에 의하면 야곱은 두 아내와 그들의 두 여종에게서 아들만 열둘을 두었는데, 그가 말년에 회고하는 바에 따르면 야곱의 마음에 두었던 아내는 라헬뿐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속임수 때문에 원치 않았던 언니 레아와 혼인했을 뿐 마음은 라헬에 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서열상으로는 열한 번째로 태어난 요셉을 사실상으로는 맏아들처럼 여겼던 것이고, 더구나 그 동생 벤야민은 라헬이 낳고 나서 죽었으니 아내의 목숨과 바꾼 귀한 아들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야곱은 레아와 그 여종들이 낳아준 열 아들 앞에서도, “내 아내가 나에게 아들 둘을 낳아 주었다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하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이러한 마음에서 비롯된 편애가 요셉을 따돌림 당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이집트로 팔아넘기게 했지만, 전화위복이 되어서 오늘 독서의 상황에서와 같은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형들이 지니게 된 편애의 희생자이면서도 이러한 아버지 야곱의 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건 없이 형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줍니다. 그리고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이라고 넉넉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섭리를 해석하지요. 


자식을 낳아준 네 여인들 중에서 애초에 젊은 야곱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라헬만을 늙어서까지도 유일한 아내로 술회하는 야곱이지만, 열두 아들을 앞에 놓고 유언을 할 때에는 요셉이나 벤야민이 아니라 장차 유다의 지파에서 메시아가 나오리라고 축복을 내림으로써 개인적 진실보다는 하느님의 섭리를 앞세웠습니다. 이 또한 야곱의 진실인 것이지요. 야곱의 이 열두 아들이 각 지파들의 족장이 되어 이스라엘의 민족사가 꾸려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열두 지파 체제가 거의 무너진 상황에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새로운 열두 지파 체제를 복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사도직을 명하심으로써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야곱의 진실이 편애를 낳았다면, 예수님의 진실은 열두 제자들이 행하는 사도직이 하느님의 일이 되게 하시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단서를 다신 것이지요. 하느님의 일, 그리고 예수님의 진실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작지만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힘차게 시작하도록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오늘 교회가 기리는 베네딕토 성인이 오늘날까지 유럽이 이룩한 정신문화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그가 기도하고 일하라는 수도생활의 전통을 확립함으로써 예수님의 진실을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수도생활을 통해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보전해 왔습니다. 그 정체성이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대조사회를 세우고 유지하며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자발적 가난, 협조자들과 통공의 관계,

공존의 지향, 적대세력에 대한 단호함


세상 안의 대조사회로서 교회가 자기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할 단서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하는 것 말고도 더 있습니다. 그것은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않으며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지팡이도 지니지 않는” 자발적 가난이며,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서도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머물 수 있는” 협조자들과 통공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인가 하면,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평화를 빌어줄 수 있는” 공존의 지향이고, 하지만 이러한 정체성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말도 듣지 않는 반대자 내지 적대세력에 대해서는 분명한 심판의 자세로 선을 긋는 단호함입니다. 이것이 사도직의 진실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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