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7월 15일)은 지난해 내가 70고개에서 처음 본 손자 녀석의 생일, 즉 첫돌입니다. 손자 녀석이 세상에 나온 후 어느새 1년이 지난 것입니다.
손자 녀석의 첫돌 행사는 지난 6일(토) 오후 6시 대전시 유성구의 ‘라임키친’이라는 음식점에서 있었습니다. 양 집안 가족, 친척들과 아들 부부의 친지 등 100명이 넘는 분들이 모여 내 손자 녀석의 첫돌 행사를 지켜보며 축하를 해주었고, 행사 후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성대한 잔치 행사 속에서 요즘은 시절이 좋아져서 아이의 돌잔치도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조금은 감탄스럽기도 했습니다. 하객들 중에는 아들의 직장 상사들과 동료들, 천주교 전민동성당 주임신부님도 있었고, 내 손자 녀석에게 세례를 주셨던 보좌신부님도 와서 인사를 하고 일찍 가셨습니다.
내 손자 녀석은 모든 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빠 품에 안겨 엄마가 들고 있는 쟁반 위 여러 가지 물품들 중에서 처음에는 건강과 장수를 의미하는 실타래와 운동선수를 의미하는 작은 활을 잡았다가 이내 놓고 마지막으로 ‘성소’를 상징하는 묵주를 제대로 잡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모든 분들이 일제히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내 주었습니다.
나는 행사 중간에 손자 녀석에게 주는 선물로 자작시를 낭송해주었습니다. 건강 문제로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해보는 시 낭송이었습니다. 2017년 11월 24일 저녁 태안문예회관 대강당에서 있은 ‘태안예총’ 창립 10주년 행사에서 축시 낭송을 한 후로 3년만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가족 행사에서 시낭송을 한 것도 오랜만이었습니다. 한 분 내 누님의 회갑연에서 축시 낭송을 한 적이 있는데, 헤아려보니 13년 전이었습니다. 그 사실에서 다시 한 번 세월 덧없음을 헤아려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손자 녀석의 첫돌을 기념하는 시를 낭송하기 전에 하객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목적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축시, 헌시, 추모 시, 등등. 어떤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짓는 시를 목적시라고 하는데, 이런 목적시들을 4대강 파괴 공사 때와 세월호 참사 때 대한문광장과 서울시청 앞 광장, 또 광화문광장과 안산시 화랑유원지 야외음악당과 서산시 호수공원 등에서 낭송을 많이 했습니다.
목적시가 매우 많아서 2012년에는 목적시들만을 모아서 등단 30주년을 기념하여 <불씨>라는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목적시들만을 모아서 시집을 내기는 제가 처음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는 정의감과 시대정신이 농축된 제 목적시들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런 제가 아들의 특별한 부탁으로 손자의 첫돌을 축하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내 손자의 첫돌을 기념하는 시를 짓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어쩌면 이 시가 내 마지막 목적시가 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저는 70고개에서 처음 본 제 손자를 위한 시를 지어서 잔치 자리에서 낭송하는 것도 매우 행복한 일로 여깁니다.”
그리고 나는 다소 쉰 목소리로 시를 낭송했습니다. 시 낭송을 마친 후에는 손자에게로 가서 녀석의 손에 용돈을 쥐어주고 볼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모든 하객들이 또 한 번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나는 케이스에 담긴 시를 며느리에게 주고 내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밖의 얘기들은 모두 아래에 소개하는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으로 이쯤에서 관련 얘기들을 줄입니다. 시를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개마고원을 달리는 용맹한 남아가 되기를!
―지윤성 베네딕도, 내 손자의 첫돌을 기념하여
나이 마흔에 반쪽을 만나 짝을 이루고
딸 다음에 아들을 얻었다
아들이 성장하여 학업을 마치고 자리를 잡더니
결혼을 하겠노라고 했다
서른도 안됐는데 왜 결혼을 서두느냐 했더니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다
순간 어느덧 황혼기에 접어든 내 나이를 의식했다
아들의 효심 덕분에
칠십 고개에서 손자를 보았다
신기하고 감미롭고, 또 감사하고 흐뭇한 마음이었다.
손자가 아들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법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날마다 녀석이 궁금했고, 녀석의 사진들과 동영상들을 보는 것이
행복한 일상이 됐다
그때마다 요것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무슨 재미로 사나 생각했다
그 후부터는 손자 녀석을 생각하며 기도를 하곤 했다
손자 녀석이 하느님의 보호 안에서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씩씩하게 자라서
늠름한 청년이 되면
할아버지처럼 평양에도 가서 대동 강변을 거닐고
할아버지가 끝내 밟아보지 못한 개마고원에도 가서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칠십 고개 영마루에서
비록 병고에 시달리는 몸일망정 한 가지 꿈이 있다면
손자 녀석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좀 더 오래 보고 싶은 것!
지금도 녀석을 볼 때마다 돈을 모르는 녀석에게 용돈을 주지만,
녀석이 좀 더 자라서 돈을 알게 되고 할아버지에게 손을 내밀면
녀석의 작은 손에 돈을 쥐어주며
그 값으로 뺨에 입을 맞추는 행복을 누리고 싶다
그것이 오늘의 내 소박한 꿈이다
그 꿈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며 산다!
*2019년 7월 6일 /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