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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이 뒤섞인 세상에서 선을 키우고 넓히라” - [이신부의 세·빛] 하늘나라, 밀과 가라지의 역사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7-26 18:00:06
  • 수정 2019-07-26 18: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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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토요일 : 탈출 24,3-8; 마태 13,24-30 



십계명은 서로 사랑하기 위한 법이며, 하느님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드러내게 하기 위한 법


오늘 독서는 모세가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준 다음 백성으로부터 그 십계명을 실행하겠다고 다짐을 받고 제사를 봉헌하며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이었고, 오늘 복음은 밀밭에 가라지들이 섞여 자라듯이 인간 세상의 현실에서도 선과 악은 뒤섞여 있지만 섣불리 악을 제거하려들지 말고 선을 키우고 넓히라는 하늘나라의 비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주님이 되어 주시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주님을 섬기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계약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는 이집트의 태양신뿐만 아니라 각종 우상은 절대로 섬기지 않으며 파라오처럼 우상을 내세워 억압하는 그 어떤 힘에도 굴종하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탈출시켜주신 것처럼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까지는 물론 그 후에도 다른 민족들의 억압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는 자유와 해방의 계약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계약은 파스카 계약이었습니다. 


파스카 계약의 쌍무 조건을 담은 것이 십계명이었습니다. 이 십계명은 우상숭배 대신 하느님을 흠숭함으로써 자유를 누리고 해방된 백성으로서 백성 안에서 하느님을 드러내야 할 의무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곡되어 버린 이 십계명을 예수님께서는 본래의 취지대로 회복시켜서 제자들에게 사랑의 법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십계명은 서로 사랑하기 위한 법이며,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법인가 하면 이 하느님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드러내게 하기 위한 법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기복신앙보다 심각한 우상숭배는 공동선을 존중하지 않는 정치와 경제질서


오늘날 십계명을 둘러싼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하느님 앞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해방시켜주는 파스카적 특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무속신앙 같은 종교적 우상숭배만을 회피하게 만들 뿐 그리스도교의 종교질서 안에서 착하게 살아가게 하는 또 다른 율법처럼 되어버려서 “예수님 믿고 착하게 살아가라”는 개인주의적 윤리로 격하된지 오래입니다. 고해소에서 겪는 현실은 이보다 더 비참해서, 고백 내용의 대부분이 주일 미사를 빠진 행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지 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그 결과 십계명은 자유와 해방의 파스카 계약을 위한 법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무속신앙은 선과 악을 가려서 선을 추구하게 만드는 역할이 아니라 오로지 운을 좇아서 팔자를 편하게 하려는 종교적 편의주의 성향으로 전락해버렸다는 뜻에서 나쁘고 악한 영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품계가 낮은 영에 의해 스스로 조종당하게 하는 기복신앙입니다.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우상숭배는 공동선을 존중하지 않는 정치와 경제질서입니다. 권력이 사람들을 섬기기보다 억압하려하고 자본이 사람들의 민생을 돕기보다 고통스럽게 하는 현실이야말로 권력과 자본이 새로운 우상의 자리에 등극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십계명 인식 안에는 이러한 의식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밀을 아끼는 마음으로 십계명을 지키려는 노력


모세의 가르침을 완성하는 예수님의 계시는 명백합니다. 십계명은 사랑의 계명으로서, 믿는 이들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함으로써 하느님의 정의를 드러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우선적 선택으로 드러나는 파스카의 길에서 서로 섬기며 서로 사랑해야 하는 질서를 소중히 여김으로써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상에 빛이요 소금으로서 드러나야 한다는 요청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것이고, 부모와 가족 그리고 이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고 그들의 권리와 명예 그리고 소유까지도 존중해야 한다는 요청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현실은 이 모두를 각자가 알아서 지키고 챙기지 않으면 권리도 명예도 소유도 빼앗길 수 있는 까닭에 각자도생의 처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교회도 믿는 이들끼리의 배려도 특별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길바닥에 내버려지는 것처럼, 공동체적 윤리가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을 둘러싼 이러한 현실에 있어서도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적중합니다. 세상의 우상숭배적 현실이나 교회 안에서 십계명이 매력을 상실한 개인윤리적 현실은 모두 가라지와도 같아서 뽑아버리고 싶어도 쉽게 뽑아지지도 않거니와 자칫하면 십계명을 사랑의 계명으로 알아듣고 실천하고자 하는 소수 그리스도인들의 선의마저 다치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도 이 비유의 교훈대로, 십계명을 둘러싼 어처구니없는 세상과 교회 안의 가라지 같은 현실을 직시하되 절대로 그에 물들지 말고 밀을 아끼는 마음으로 십계명을 자유와 해방 그리고 사랑의 법으로 알아듣고 지키려는 노력을 북돋아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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