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에 주님의 자리를 마련하십시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한 우리 신도들도 이기주의에 빠져 나만의 무덤을 만들어 그 속에서 안주하느라 나 자신을 불러 세우는 주님의 초대를 못 듣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생명이신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과연 내 안에 주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가? 나는 매일의 삶에서 주님께서 활동하시도록 그분께 시간을 내드리는가? 혹여 그분께서 들어오시는 것을 거부하고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드느라 너무 바쁜 것은 아닌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과의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마음, 내 영혼 안에 주님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선과 단식, 고행과 기도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분명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고름을 짜내는 일과 같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마음은 비로소 주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겉으로만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적은 위선이기 때문입니다.”(I, 107.)
자선과 단식, 고행과 기도로 하느님을 향해 나를 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며 가톨릭 신도로서 살아가야 하는 영성의 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I, 73/4)
먼저 사랑의 길로서 자선의 길이 있다. 자선은 무엇보다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고독한 사람들, 나아가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발견할 줄 아는 자세를 말한다. 그러므로 자선은 우리의 시간과 우정,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서로 연대하는 것을 말한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을 구별해 주는 표지다.
그 다음 고행의 길로서 단식의 길이 있다. 단식은 물질적 재화가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목적이 될 수 없음을 상기시켜 주는 예언적 행위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단식은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가치들에 대해 최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란 정의와 사랑, 평화, 연대를 말한다.(이사 58장) 고행은 우리를 죄로부터 회복시켜 줄 뿐만 아니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구체적 방법이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인간적 빵’을 포기하고 배고픔을 느낌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빵’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뿐이라는 점을 되새기게 된다. 또한 그것은 아무 대책도 없이 일 년 내내 강제로 단식해야 하는 사람들의 힘겨움을 몸소 느끼게 해 준다. 단식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더 민감하게 해 주며 더 자비로워지게 해 주고 더욱더 그들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 준다.
그 다음 기도의 길이 있다. 하느님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기도는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에서 출발해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축성된 삶으로 나아가는 기도다. 기도는 하느님을 향해 자신을 개방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그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행위다. 스스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해할 뿐이다. 진정한 기도에는 투명성과 항구함, 참됨이 요구된다.
“여러분은 빵을 나눌 준비가 됐습니까?”
이윤, 소비, 쾌락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서로 다른 이익 집단들이 판을 주도하는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부유한 사람과 가난함 사람의 차이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갈등과 불신의 골은 깊어가며, 서로 외면하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만을 챙기는 집단 이기주의가 사회를 해체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절망 속에 불평만 하고 있으려는가?
그들은 무덤만을 보고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비통함과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부활의 기쁨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서 그들 곁으로 다가와 함께 걷고 계신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립니다. 누군가 내게 문을 열어 준다면, 들어가서 함께 만찬을 들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 들어오신다. 그리고 늘 이렇게 물으신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내디딜 준비가 됐나요?”라고.
주님께서는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도록 명하셨다.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신다는 것은, 모든 형제를 비롯해 삶의 모든 차원에서 빵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빵을 나눌 준비가 됐습니까?” 우리는 이 물음에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예, 준비됐습니다!”
자기 안의 이기심으로부터 회심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와 부도덕 그리고 무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원치 않는 단식과 고행을 강요하며 그들을 단죄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이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위해 준비한 계획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분의 계획은 우리 모두가 이 지구상의 재화를 함께 나눔으로써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먹을 음식을 갖지 못한 채 버림받지 않고, 그 누구도 의사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가지 않으며, 그 누구도 인간 이하의 상황을 견디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오늘날 각 개인의 죄, 더 나아가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죄는 이런 하느님의 꿈이 실현되도록 놔두지 않고 있다.(I, 71)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안의 이기심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회심하기 전까지, 우리는 어떠한 신뢰와 평화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회심하기 전까지 우리는 어떠한 기쁨도 환희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권력과 돈, 명예에 대한 지나친 야망은 커다란 내적 공허함만을 만들기 때문이다. 내면이 공허한 사람은 기쁨과 평화 그리고 희망을 전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만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들은 결코 형제간의 결속을 이룰 수 없다.(I, 198)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호하게 말한다. “누군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고 낙원에 가기만을 바라면서 무조건 참는다면, 그는 아편에 심각하게 중독된 사람입니다.”(IV, 208)
▶ 다음 편에서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권력’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참고문헌 >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프란치스코. 한 사목자의 성찰. 자비』, 윤주현 옮김, 생활성서, 2014. [I]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아브라함 스코르카, 『천국과 지상』, 옮긴이 강신규, 율리시즈, 2013. [IV]
이기상 교수님의 ‘허무주의 시대와 영성 - 존재의 불안 속에 만나는 신(神)의 숨결’은 < 에큐메니안 >에도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