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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재물·군사력에 기대지 말고 선교해야” - [이신부의 세·빛] 불행과 행복, 비구원과 구원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8-26 11:57:07
  • 수정 2019-08-26 12: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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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간 월요일 : 1테살 1,1-5.8ㄴ-10; 마태 23,13-2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멸망을 바라셔서가 아니라 구원되기를 바라셔서 최후의 경고를 하셨다고 봐야지요. 이미 그들의 적대적인 반응을 익히 아시면서도 마지막으로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목숨을 건 충고를 하셨습니다. 바리사이즘과의 결별까지도 각오하시고 백성이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는 있었지만 감히 입 밖에 내어 발설할 수 없었던 그네들의 위선적 행태를 가차 없이 비판하셨습니다. 어제의 복음과 연관 지어 보자면, 구원의 좁은 문으로 들여보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셨다고 봐야지요. 


바리사이 출신으로서 율법에 있어서는 그 어느 바리사이보다 열성적이었던 바오로도 그 열성 때문에 예수 믿는 이들을 박해했던 전력이 있지만, 바리사이에 대한 예수님의 충정어린 경고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그분의 사도요 선교사가 되어 다신교의 우상숭배 풍습에 젖어 있던 테살로니카 사람들에게로 자기 몸을 던졌습니다. 이를테면 좁은 문으로 들어간 꼴찌로 자처했던 겁니다. 


유럽 복음화를 향한 전초기지로 삼은 그리스 땅, 그리고 그 그리스의 첫 선교지로 선택한 테살로니카 사람들은 아직 하느님의 계시를 받지도, 듣지도 못해서 수많은 신들을 제멋대로 만들어내고는 오직 자연과 세상에 대한 인간 이성만을 떠받들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최고선이 가려져 있으니, 인간 사회를 이룩하는 공동선의 질서도 힘과 돈을 가진 자들 위주로 이루어진 귀족사회를 꾸려놓고서는 그곳이 천상낙원인 줄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고대 그리스에서 발원했다는 민주주의 체제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런 테살로니카의 그리스 사람들에게 사도 바오로는 말로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식으로가 아니라 체험으로,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인 초대로, 미개한 우상숭배 풍습에 대해서 차원 높은 하느님 신앙으로 선교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민폐를 끼치지 않고 천막을 만드는 노동으로 생활비와 활동비를 벌어가며 모범을 보였으며, 신앙을 강요하지 않고 신앙을 삶으로 증거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감화시켰습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삶으로 인간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구심점이자 핵이 되었습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 생활로 고생스럽지만 가장 겸손한 처신으로 다가간 접근방식이 사도 바오로가 알아들은 구세주 예수님의 강생의 신비였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도 지고하신 분이시지만 비천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시어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셨고, 사람들 중에서도 왕이나 귀족이나 부자가 아니라 가장 가난하고 가장 힘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이 강생의 신비가 간직하고 있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선교의 핵심입니다. 권력이나 지식 또는 재산이나 문화 같은 세속적 힘의 우위로 다가가면 실패합니다. 오직 하느님께서 주신 힘인 신앙과 도덕의 우위로 다가가야 합니다. 겸손과 모범은 그 결과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래서 예수님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권력의 우위를 내세운 선교 실패 사례를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사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로마문명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고서도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타락하여 멸망했다면 그리스도교 역시 로마문명이 지닌 권력의 세례를 받아 영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를 두고, ‘신국론’을 썼지요. 후대의 학자들은 이를 조롱하여 말하기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비꼽니다.


군사력의 우위로 원주민을 학살하다가 실패한 선교 사례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볼 수 있는데, 과달루페에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그나마 대학살을 손수 막아내셨습니다. 과학문물을 내세워 선교하다가 실패한 사례는 일본에서, 과학문물과 지식에다가 서양문명과 백인종의 우월함을 앞세워 선교하다가 실패한 사례는 중국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문물보다 진리에 대한 탐구심과 기대감으로 선교사의 도움 없이 그러나 선교사들의 저술에 힘입어 천주교를 도입한 조선의 선교사례가 유례없이 독창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 결과가 오늘날의 교세 차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 교회에 주어져 있는 동북아시아의 복음화와 대륙선교의 소명을 생각합니다. 


겸손한 자세와 높은 문화적 교양으로, 그러나 권력이나 재물이나 군사력이나 심지어 지식 같은 세속적 힘에 기대지 말고 선교해야 합니다.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하되 민족이 아니라 문명 단위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비구원을 구원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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