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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을 조심하라 - [이신부의 세·빛] 자기 배만 채우게 유혹하는 공리공론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9-10 17:44:52
  • 수정 2019-09-10 17: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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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화요일 : 콜로 2,6-15; 루카 6,12-1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어 열둘을 뽑아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사람을 고른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들었으면 밤 새워 기도하시며 뽑으셨습니다. 그렇게 고심 끝에 뽑힌 열두 사도는 양성 과정에서 겨자 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다는 야단도 들어야 했고 수난과 부활 예고를 세 번씩이나 듣고도 막상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니까 낙심하여 흩어지기도 했지만, 예고받은 대로 정말로 그분이 부활하셨음을 체험하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이스카리옷 유다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열한 제자가 모두 일생과 목숨을 바치는 사도로 변화된 것입니다. 용병술의 성공률로 따지자면 91.7%입니다. 이 비율이 얼마나 대단한 숫자인지는 우리 자신이 세례를 받으며 신앙을 고백한 후에 어떻게 신앙을 증거해 왔는지 잠시 살펴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도들이라는 주춧돌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주춧돌 중의 하나로 자처해온 사도 바오로 역시 비상한 과정을 거쳐서 사도직에 부르심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가 콜로새의 소아시아인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이 호소의 중간 결론이 감사하라는 말인데, 이는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일 겁니다. 감사하는 그가 역설하는 그리스도의 신비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에게 계시하신 진리는 강생과 파스카와 부활의 신비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언급은 강생의 신비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다”는 보충 설명은 강생의 신비가 가져다 준 은총의 효과를 상기시키는 것이지요. 인간이 신성의 품위에 참여할 수 있는 그 엄청난 가능성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다”는 언급은 부활의 신비를 일컫는 말입니다. 강생의 신비가 가져다 줄 은총 효과를 완성하고 가시화시키는 것이 부활의 신비인데, 이는 다시 말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을 신성의 가능성으로부터 신성의 현실로 도약시키는 힘이라는 뜻입니다. 그 힘의 정수가 사랑이지요, 자기를 버리고 하느님으로 채우는 희생적 사랑.


이 사랑의 정체를 공생활 전체를 통하여 보여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사도 바오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 죄를 지어 마귀의 종살이를 해 오던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자 하신 것이라고 풀이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죄가 어떻게 없어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지은 인생의 죄로 인한 인과응보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이 치유와 구마의 기적이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헌신이며 이를 잊지말라고 생의 마지막에 남겨주신 유산이 성체성사입니다. 이로 인하여 거룩하게 그분처럼 사랑을 행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 파스카 신비의 관건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풀이로써 사도 바오로는 파스카 신비까지 암시적으로 콜로새 소아시아인들을 깨우쳐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강생의 신비는 모든 사람이 지닌 가능성, 즉 누구나 하느님을 닮을 수 있는 존엄성의 품위를 인정하는 것이라서 자유의 근거가 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신분제도로나 학력으로나 재산으로나 다른 어떤 인위적 조건을 내세워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강생의 신비는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입니다.


인간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가 다시 하느님의 자리로 돌아가신 부활의 신비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 바치는 희생적 사랑이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지 않음을 역설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을 얻어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실천한 희생적 사랑의 십자가만이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따라서 그 사랑의 기운으로 온전하지는 못해도 할 수 있는 한 마음과 힘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 특히 되갚을 수 없어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평등하게 저마다 행복을 누리고 공동선에 기여할 기회를 갖게 하는 이 파스카 신비가 세상을 구원하고 역사를 앞당기며 인류를 하느님께로 이끌 것입니다.


강생의 신비에 바탕을 두고 부활의 신비의 지평을 활짝 펼친 위에 파스카 신비로 방점을 찍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아니면, 그래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지도 않고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지도 않으며 온갖 이유로 사람들을 차별하면서 사랑하기는커녕 자기 배만 채우게 유혹하는, 나머지 다른 공리공론들은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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