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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 [이신부의 세·빛] 기적을 낳는 원수 사랑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9-16 14:48:26
  • 수정 2019-09-16 14: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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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 1티모 2,1-8; 루카 7,1-10



사랑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기적을 낳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하느님을 닮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간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믿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사람들에게 요청하셨습니다. 그 사람들도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의 인간이 되게 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당신을 믿는 예수님에게 하느님께서는 기적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처럼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사랑이 믿음을 낳고 믿음이 기적을 낳는다는 것, 이것이 오늘 복음이 전하는 로마인 백인대장의 일화가 전해주는 진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하던 로마인들은 그들의 억압과 착취로 말미암아 유다인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잔인하고도 악랄하며 또 교묘하게 유다인들을 통치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로마인은 유다인의 원수였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로마인 백인대장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유다인 노예가 자신 밑에서 힘들게 노예생활을 하다가 중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께 관한 소문을 듣고는 자기 노예를 살려주십사고 청했습니다. 매우 이례적인 청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갈릴래아는 국경지대에 속했고, 카파르나움은 거주민들이 제법 많았던 고을이었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백인대장은 백 명의 로마 군인들을 지휘하는 장교였습니다. 그 백인대장은 유다인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눈 때문에라도 로마인 고급 장교인 자신을 만나기 꺼려할 것이라는 짐작에서 대신 유다인의 원로들을 보내어 청했습니다. 이 원로들은 로마인 백인대장의 청원을 대신 전해주고자 했을 정도로 로마인 백인대장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원로들은 백인대장이 그 유다인 노예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둔하고 있던 지역에서 회당도 지어줄 정도로 유다인들과의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기꺼이 청원 심부름을 맡았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다인들 사이에서도 그 백인대장에 대한 평판도 좋은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매우 이례적인 로마인이었습니다. 


유다인 원로들이 찾아와서 로마인 백인대장의 청원을 전해주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대로 로마인 백인대장의 집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전갈을 받은 로마인 백인대장이 다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는 유다인이 이방인인 로마인의 집에 오는 일이 이스라엘의 율법에 어긋난다는 사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나오지 않고 대신 이렇게 청했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라 예수님을 불편하게 해 드리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한편,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이었고 또 부하들을 명령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지휘관이기도 했으므로 충직하게도 군인정신에 따라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깍듯이 대했습니다. 또 자기 종을 괴롭히고 있는 중병도 영적인 위계질서 상으로는 주님이신 예수님의 품계보다는 한참 아래 서열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영적인 존재가 일으키는 소행이라고 여겼으므로 그저 주님의 말씀 한 마디라면 자기 노예의 중병도 당장 나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 믿음을 전하시던 예수님께서 감탄하신 이유는 이 때문이었습니다. 중병에 걸린 노예를 낫게 해 주는 기적은 차라리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 노예는 치유의 말씀 한 마디도 하실 필요 없이, 예수님의 이 감탄 말씀 하나로 중병이 나아서 건강한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사랑하는 자기 제자 티모테오에게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맡겨진 모든 사람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닮게 되며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그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 하느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지요.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고르넬리오와 치쁘리아노 역시 그 믿음을 간직했기에 교회를 위하여 일했고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이 로마인 백인대장의 믿음을 신자들이 본받도록 하기 위하여 미사 중 영성체 예식에 그의 기도를 도입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이 기도에 담긴 믿음을 우리가 본받는다면 우리의 삶이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닮게 되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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