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신앙경력만 쌓을 것인가 영적으로 진보할 것인가 - [이신부의 세·빛] 신앙의 신비, 지혜의 신비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9-18 18:30:41
  • 수정 2019-09-18 18:30:41
기사수정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 1티모 3,14-16; 루카 7,31-35



흔히 죄를 지은 사람은 그 행위의 사악함을 곧 잊어버리고 마는데, 죄를 당한 사람은 그 상처를 쉽사리 잊지 못하고 삽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가 드리운 영적인 그늘 속에로 빠져 들어가는 반면에, 죄를 당한 사람은 그 상처를 신앙으로 조명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습니다. 이 자유를 선용하면 죄로 인한 상처는 십자가로 변화되고 그 십자가는 부활의 은총으로 승화되어 그 죄를 없애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이 자유를 행사하지 않으면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남아서 스트레스가 되고 암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죄로 인한 상처는 독성이 강해서 인체의 면역력을 능가하는 까닭입니다. 


신앙의 신비란 죄로 인한 상처를 부활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영적인 능력에서 기인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권명하고 있는 대로,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시고, 그 옳으심이 성령으로 입증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당신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사도가 위대하다고 찬송하는 신앙의 신비가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체험되기 위해서는 첫째, 사랑을 행하는 희생이 가져다주는 영적인 보람의 힘을 체험하거나, 둘째 다른 이들이 저지른 죄를 당했을 때 그 죄의 상처를 사랑의 희생으로 전환시킬 줄 아는 깨달음을 발휘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오늘 복음에서도 묘사되고 있는 대로, 아무런 기준 없이 세태에 따라서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곡을 하면 우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거나 곡을 해도 울지 않는 대신에 피리를 불면 곡을 해야 한다고 탓하고 곡을 하면 춤추어야 한다고 딴지를 거는 사람이 소수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례를 드신 이유는 세례자 요한의 경건한 회개 요청을 받은 바리사이들이 그를 빌미로 당신의 복음선포 생활을 도덕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세례자 요한이 경건한 생활을 하며 회개를 요청하며 세례를 베풀면 이를 빌미로 예수님 일행이 먹고 마시기만 하며 경건하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비난을 퍼붓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영적인 권위로 쫓아내시자 요한에게 마귀가 들렸다고 비난하시는 식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속물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기준 없이 세태를 따라가기도 하고 또는 세태를 거슬러 진리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신앙의 신비와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태를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며 살아가는 동안에 이런 저런 세상의 죄에 물들어 살아갑니다. 짓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인들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짓는 경우에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그 죄를 씻으려 애를 쓰고, 죄를 당한 경우에는 기도와 희생을 통하여 그 죄의 상처에서 벗어나려 애를 쓸 뿐입니다. 


만일 신앙인들에게 죄의 이러한 현실과 영적인 영향력에 대한 통찰이 없으면, 죄를 짓는 경우에나 죄를 당하는 경우 모두 영적인 진보가 어렵겠습니다. 그저 신앙경력만 쌓일 뿐입니다. 


우리가 지난 토요일에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냈습니다만, 신앙의 신비에 있어서 십자가가 지닌 현실적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저질렀거나 당한 죄의 영향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자기 탓으로 죄를 짓고 겪는 죄의식과 죄책감은 고해성사와 묵상으로 깨달음을 얻고 희생의 보속을 실천함으로써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만, 남의 탓으로 죄를 당하고 남은 상처와 분노에 대해서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수밖에 달리 해결책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뜻을 깨닫고 이를 부활의 빛으로 조명해야만 하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대로, 죄의 상처가 주는 독성을 알고 이를 하느님 자비의 빛으로 비추어 더 이상 그 독성이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 안에서 더 진행되지 않도록 막아야 함과 동시에 자발적이고도 능동적인 보속을 해야겠다는 깨달음에 힘입어 부활의 은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습관, 새로운 계획, 새로운 실천으로 잉여의 선행을 자신의 삶에 남김으로써 부활의 은총으로 나아가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전에 거룩한 변모의 기적으로 행하시고 세 제자에게 보여주신 이유, 그리고 이 과정을 교회가 전례에서 40일 간격으로 거룩한 변모 축일과 성 십자가 현양 축일로 지냄으로써 신자들에게 깨우치려고 하는 까닭을 우리가 모른 척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상과 인생에서 죄와 관련된 이런 저런 경험들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의 탓으로 저지른 죄는 반성하고 보속해야 마땅하지만, 남의 탓으로 당한 죄의 상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상처가 독이 되어 몸을 망가뜨리고 마음을 그늘지게 하며 영혼의 생기를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활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6107
기자프로필
관련기사
댓글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비회원 이름 패스워드 자동등록방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