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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놓은 죄악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선은 나타나리라 - [이신부의 세·빛] 상처 입고 깨어난 민중에 달렸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9-23 15:41:46
  • 수정 2019-09-23 15: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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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 에즈 1,1-6; 루카 8,16-18


▲ (사진출처=Padre Pio Foundation of America)


오늘은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사제를 기리는 날입니다. ‘카푸치노의 작은 형제회’ 소속의 수도 신부였던 그는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섬겼는데, 당시 예수님의 십자가상 상처를 똑닮은 다섯 상처를 양손과 양발 그리고 옆구리까지 무려 50년 동안 몸에 지니고 살면서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 오상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상처와 마찬가지로, 비오 신부가 살았던 20세기 전반기와 중반기에 세상 사람들이 저질렀던 전쟁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기적이었습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비오 신부가 겪어야 했던 상처를 그의 거룩함으로 인한 기적으로만 바라보려 합니다. 


실제로 그 상처의 직접적인 배경과 원인이 된 세상의 죄를 미처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비오 신부가 살았던 조국 이탈리아와 유럽 여러 나라들은 절대 다수가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그리스도인들이었던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군사력이 미치는 모든 지역에서, 유럽이든 아시아든 아프리카든,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하면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전투기와 탱크, 군함 등 그 당시 첨단 과학기술로 만들어낸 대량살상무기로 군인과 민간인 가릴 것 없이 학살했습니다. 그리하여 전쟁 단위당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야 했던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전쟁이 이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죄악들도 엄청납니다. 진실을 가리고 권한을 남용하는 죄악이 하늘을 찌르고 있을 정도입니다.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들에게 저질렀던 죄악도 컸지만, 이를 보고 배운 자들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자기 나라 동포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죄악은 더 큽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세워야 하는 정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겁니다. 


양상만 다를 뿐 시대를 가리지 않고 저질러지는 죄악상은 숨겨놓기 일쑤이지만 때가 되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죄악을 없애고자 실천하는 선행도 잘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나타나기 마련이지요. 강생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빛으로서 어둠을 밝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성령으로서 사람들마다의 양심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에서 깨어있는 사람들은 그 양심에 들어온 빛을 자신들의 집단적 지성과 연대적 영성으로 확대재생산하여 온 누리의 어둠을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5백 년 전인 그 옛날에 서아시아 일대에서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가 저지른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죽임을 당했고 나라를 빼앗겼으며 바빌론으로 끌려가 노예살이를 하면서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빌로니아를 딛고 일어선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가 자신은 하느님을 믿지도 않았으면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내리신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비롯하여 바빌론에 끌려와 있는 모든 포로들을 석방하고 예루살렘에는 성전까지 지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역사를 역주행하려는 악행은 머지않아 역사의 정의를 세우시는 하느님의 철퇴를 얻어맞게 될 것입니다. 


이 땅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도 백 년 전에 끔찍한 전쟁과 학살, 억압과 착취의 죄악이 저질러졌습니다. 이 죄악의 장본인이었던 전범국가 일본은 핵폭탄 두 발을 얻어맞고 기겁해서 무조건 항복을 하고 패전했지만, 자신들이 저질렀던 죄악상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책임도 지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려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역주행하려는 이런 악행은 머지않아 역사의 정의를 세우시는 하느님의 철퇴를 얻어맞게 될 것입니다. 숨겨진 죄악의 음모가 드러날 것이고, 지금은 미약하게 보이는 일본 내 시민운동과 그리스도인들의 호헌운동이 환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 분단 정국 하에서 친일 독재세력과 이에 부역한 덕분에 기득권을 얻은 자들이 이 땅에서 백성들을 상대로 저질러온 죄악상도 이미 서서히 드러나고 있거니와 앞으로 더 크게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죄악상이 드러나게 될 그 속도와 규모는 죄악의 상처를 입고 깨어난 민중이 얼마나 더 의로울 수 있고, 얼마나 더 연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숨겨놓은 죄악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선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역사에서는 과연 누가 키루스의 역할을 할까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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