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 하까 1,15ㄴ-2,9; 루카 9,18-22
하느님께서는 영으로 그들 가운데 머무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까이 예언자는 자신이 받은 하느님의 말씀을 총독과 대사제에게 전했습니다. 하느님의 집을 지어야 하는데 폐허 속에서 의기소침해진 백성을 데리고서는 도무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던 지경이라 하느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시며 당신께서 영으로 그들 가운데 머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약속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동정녀 마리아에게 보내셨고, 다윗의 자손인 요셉을 그 정배로 삼으심으로써 구세주를 세상에 강생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강생하신 구세주께서는 그 다음 단계로서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해서 창조된 인간 세상을 완성하기 위하여 파스카 과업을 수행하셨습니다. 그 일의 초점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과 그 일에 헌신할 일꾼들을 양성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의 문명은 이 파스카 과업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이러한 파스카 과업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가던 중세 말기에 여러 명의 아웃사이더들이 유럽 가톨릭 신자들의 의식을 일깨우고자 노력했습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십자군 전쟁 탓으로 마주하게 된 이슬람 문명의 지성이 이 각성 작업에 큰 몫을 했습니다. 이미 13세기에 이탈리아의 단테는 ‘신곡’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중세 가톨릭 신자들의 종말의식을 풍자적으로 일깨웠고, 16세기 스페인의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통해서 베넹헬리라는 이슬람 지성인이 중세의 유럽과 가톨릭을 바라보고 쓴 작품을 번안해서 얼치기 기사의 모습으로 가톨릭 신자를 신랄하게 풍자했습니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빈첸시오 신부는 행동으로 예수님의 파스카 과업을 계승하고자 용감하게 혈혈단신으로 행동하던 사도였습니다.
이 문인들이 엄혹한 시대의 분위기를 감안해서 희곡이나 풍자소설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남긴 언론의 역할을 했다면,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빈첸시오 신부는 행동으로 예수님의 파스카 과업을 계승하고자 돈키호테처럼 용감하게 혈혈단신으로 행동하던 사도였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성령에 힘입어, 당시 완고하기 짝이 없었던 가톨릭교회 안에서 투쟁하다시피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혼자 힘으로 부치니까 아예 같은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성직자들을 양성하는 역할을 해 냄으로써, 단테가 ‘신곡’에서 묘사한 내세의 천국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이신 대로 현세에서 이미 천국을 시작하는 파스카 과업을 계승한 것입니다. 파스카 과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이들의 운명은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예고하신 바 있습니다.
파스카의 신비는 그 과정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부활의 은총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빈첸시오 신부가 세운 수녀회는 봉쇄된 울타리 안에서 평생 나오지 못하고 기도만 해야 수녀로 인정받던 중세 유럽 가톨릭의 풍토에서 처음으로 활동하는 수녀들의 공동체가 됨으로써 오늘날 대다수가 된 활동 수녀회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그의 무덤에서 기도하다가 영감을 받은 파리 가톨릭대학 교수 오자남이 평신도들로 이루어진 사도직 단체를 창설해서 오늘날에는 전 세계로 퍼져 있고, 이 ‘빈체시오회’가 수녀회 못지않게 유명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전국 조직을 갖추고 있는 이 사도직 단체는 열심히 활동하기는 하지만 주로 사회복지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빈첸시오 신부가 계승하고자 했던 뜻은 그 이상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오히려 교회가 복음화될 수 있는 파스카 신비를 목표로 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는 교회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이고 복음을 들은 가난한 이들은 그 존재 자체로 교회와 문명이 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푸른 신호등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행동이 국제적 연대로 일어났고, 그레타 툰베리라는 소녀가 국제연합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소녀가 강조했다시피 경제성장에만 몰두하고 있는 선진국 정치가들과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선진국의 시민들이 탄소와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바람에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되고 있어서 지금 당장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는 한 인류는 환경의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제일 큰 피해를 입을 사람들은 선진국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겪고 있는 위기와 불행감은 자연환경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진로에 대한 빨간 신호등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고,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부활을 바라보며 나아가도록 빈첸시오 성인의 전구를 청합니다. 우리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의 영이 머무시는 집이 우뚝 세워지기 위해서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