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교회의 존재감이 그립습니다" - [이신부의 세·빛]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0-08 15:37:37
  • 수정 2019-10-08 16:23:56
기사수정


중 제27주간 화요일 : 요나 3,1-10; 루카 10,38-42


▲ ⓒ 문미정


20세기 가톨릭교회의 예언자라고도 불리었던 떼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는 예수회 소속의 수도자로서 고생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신앙의 진리를 믿는 자의식과 함께 자연에서는 물론 인류 역사에서도 어김없이 발견되는 진화 현상을 통해 과학의 진리를 탐구했던 그는 일생에 걸친 사제 생활과 과학자 활동의 결론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화의 최종 정점이시며, 우리는 자율 진화나 계획 진화를 통해서 그분께로 나아간다. 그래서 진화적 인간은 자유의지를 신앙이라는 나침반에 따라서 계획 진화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적 자유의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현상에 내재된 모순이 쌓일 대로 쌓였다가 돌연변이로 폭발하는 자율 진화에 내맡겨질 수 밖에 없다."


자연에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그저 원인이 결과로 나타날 뿐입니다. 어느 한 곳의 기압이 낮아지면 평형 작용으로 바람이 불고 그 기압차가 크면 클수록 바람이 커져서 태풍이 됩니다. 지구에 있는 수많은 강들이 강물에 실어나르는 퇴적물이 쌓이고 쌓여서 바다속 지각을 누르는 압력이 커지면 평형 작용으로 다른 쪽 지각이 움직이면 지진이 되고, 마그마가 분출되면 화산폭발이 일어납니다. 


역사에서도 평형 작용이 있습니다. 인권을 억누르는 독재정치가 자행되면, 민심 왜곡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한, 억눌린 민심이 폭발하는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그 작용입니다. 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으면, 거짓 이데올로기가 작동하지 않는 한, 평등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됩니다. 


강생의 신비는 한없이 지체될 것 같은 인류의 역사에서 더 이상 세상의 죄가 많아지기 전에 그 죄를 없애시려고 하느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신 사건입니다. 역시 평형 작용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 옛날 세상의 죄가 쌓이고 있던 니네베에서 요나가 외쳐야 했던 회개의 목소리도 하느님의 개입이었습니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고 요나는 기록했습니다. 실제 일어난 사건의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교훈문학으로서 쓰인 요나 예언서 역시 하느님의 개입에 준하는 신앙의 움직임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신앙은 사람들의 양심을 강화시킵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해야 할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화시켜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라자로의 집에 들르신 목적은 쉬기 위해서였습니다. 복음선포 활동에 지치신 그분과 제자 일행으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쉬게 하기 위해서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음식도 해드려야 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드시면서 정작 하고자 하셨던 말씀도 들어드리는 말씀 시중도 필요했습니다. 그러자면 마르타는 음식 시중을, 마리아는 말씀 시중을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쪽만 고집하는 사람이 있으면 곤란합니다. 이 경우에도 평형 작용이 작동하게 됩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평형 작용에 해당하는 개입입니다. 허기진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음식 대접을 하지는 않고 얼굴만 쳐다보는 식의 대접도 곤란하지만, 배고프다고 해서 음식만 내놓을 뿐 오가는 대화가 없거나 허접하다면 그런 자리도 만족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함께 그 기운을 채워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외치는 회개의 요청에 응답한 니네베 사람들의 믿음은 희망사항입니다. 요나서를 기록하고 후대에 전한 이스라엘의 신앙적 요청입니다.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선하게 쓰기보다 이익을 좇아서 마음대로 쓰다가 악이 쌓이면 그제서야 폭발하는 모순을 감당하지 못하고 선을 찾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징표를 놓치지 않고 선을 추구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현 시기 한국 사회에서 폭발하는 민심이 바로 이러한 이치에 해당합니다. 그동안 무려 70년 동안이나 쌓여온 검찰의 비리와 불의가 쌓이고 쌓여서 그 개혁을 요구하는 민심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언론이 이러한 민심의 여론을 국론 분열로 호도하며 외면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억압기제라고 보입니다. 


마르타의 음식 시중이 필요하듯이, 말씀 시중을 들어드린 마리아의 역할도 필요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의 진리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복음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증거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습니다. 요나의 외침, 니네베 사람들의 믿음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사회악에 가담하는 검찰과 언론의 타락을 보면서 공동선을 일으켜서 역사의 평형을 잡아주어야 할 신앙인의 역할을 생각합니다. 교회의 존재감이 그립습니다. 가톨릭의 목소리가 아쉽습니다. 제도교회의 침묵이 못내 아쉽습니다. 백 년 전 삼일 만세운동 당시에도 이랬을 것 같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6144
기자프로필
관련기사
댓글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비회원 이름 패스워드 자동등록방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