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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교회답게 사는 삶 - [이신부의 세·빛] 종과 주인, 죄와 의로움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0-22 16:22:58
  • 수정 2019-10-22 16: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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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화요일 : 로마 5,12.15ㄴ.17-19.20ㄴ-21; 루카 12,35-38



오늘 말씀의 주제는 종이 저지르는 죄와 주인이 기대하는 의로움입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진실과 이를 바탕으로 제자들에게 기대하시는 희망사항이 있고, 사도 바오로가 이 진실과 희망사항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한 내용, 즉 죄를 저질러 죽음을 자초한 인간의 운명과 이를 극복하신 예수님의 의로운 행위와 생명을 얻게 된 구원의 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람직한 자세를 종과 주인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낮에 무덥고 밤에 시원한 그곳 날씨 때문에 혼인 잔치는 주로 밤에 열렸는데, 이 잔치는 신부의 집에서 열리기 때문에 신랑의 집이 멀면 도착하는 시간 때문에 늦을 수도 있었고 얼마큼 늦을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서 잔치를 시중드는 종들은 등불을 켜 놓고 기다리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혼인 잔치에 신랑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렸을 때 조는 바람에 곧바로 문을 열어 주지 못한다거나 또는 뒤늦게 문을 열어 준다고 하더라도 잔치가 미처 다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낭패였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문을 열어 주고 또 준비가 다 되어 있는 경우에는 주인이 종을 칭찬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이 와서 볼때에 깨어 있는 종들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충직한 종들에게 주인 신랑은 기쁜 나머지 그 종들을 주인처럼 식탁에 앉히고 자신이 종들처럼 띠를 매고 종들의 식사 시중을 들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도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참석하셨던 일화가 요한 복음서에 소개되어있는 바와 같이, 그분은 친척이나 지인들의 혼인 잔치에 참석한 경험이 많았을 터이고 그럴 때마다 종들의 여러 모습을 보셨기에 오늘 복음과 같은 비유가 나올 수 있었겠지요. 


사실은 제자들을 불러 모아 당신이 선포하시던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군중보다 더 자세히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뒤를 이어 선포할 수 있도록 사도로 양성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과 양성활동을 이 비유에 담으셨다고 봅니다. 당신은 주인에 해당하는 스승이셨고 그래서 군중 속에서 열심한 이들을 뽑아 제자로 삼으셨고 지극 정성으로 사도로 양성하셨지만, 그들이 좀처럼 깨닫지 못하고 굼뜬 모습을 보시고서는 매우 답답해 하셨습니다. 


마치 신랑 주인이 혼인 잔치에 도착했는데 기다리기도 않고 자고 있거나, 기다리더라도 졸고 있거나, 등불에 꺼져가도록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거나 심지어 잔치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종들처럼, 제자들은 스승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많았었습니다. 불러도 응답하지 않는 이들은 제쳐놓더라도, 응답한 이들도 누구의 서열이 더 높은지를 두고 다투기도 했고, 어느 제자에게 스승의 눈길과 관심이 더 가는지를 신경 쓰면서 질투도 했으며, 안식일 율법을 어기는 바람에 감시하던 바리사이들로부터 책잡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스승 예수님의 대책은 제자들을 종으로가 아니라 벗으로 대하고, 때로는 주인처럼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꼴찌가 되어야 첫째가 될 수 있다는 말씀도 나오게 된 것이고, 서로 섬겨야 한다고 발을 씻겨주는 행동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흠결을 책망하는 바리사이들에 대해서는 제자들을 나무람이 없이 방패막이가 되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종으로서 제자들을 주인처럼 모시고 섬기신 모범의 결정체가 성체성사였습니다. 


세족례를 먼저 행하신 다음에 제정하신 성체성사는 장차 제자들도 사도가 되어 서로 섬길 뿐만 아니라 믿으려는 이들도 섬기라고 솔선수범하신 행동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배운 그리스적 사유를 동원해서 심오한 철학적 원리로 이 가르침을 정리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예수님 한 분을 통하여 이 죄와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나서 은총과 생명을 누리며 구원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한 죄를 없애기 위해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의로움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종에게 주어진 자유와 책임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종을 관리하는 주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그 이치가 죄와 죽음, 순종과 생명이라는 설명에 함축되어 담겨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깨달음과 용기를 얻어 사도가 되었고, 사도로서 믿는 이들에게 선교와 순교의 모범을 보이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가 교회적인 품위를 갖추는 길이 이렇게 제시된 셈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믿는다고 신앙으로 고백하면서도 제도교회의 이미지로만 교회를 바라보는 경향이 너무 커서 삶과 관계에 마땅히 요청되는 교회적 품위를 잊어버리고 살기 쉽습니다. 하지만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교회에 바라시고 이끄시는 은총 역시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를 교회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적인 품위가 우리 삶과 인간관계에 깃들려면,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자유를 지니되 종처럼 다른 이들을 섬기면 됩니다. 그 점에 있어서 예수님이 기준이요 모범이십니다. 


그 섬김의 마음과 자세에 진정성을 갖추는 것, 이것이 우리의 구원을 좌우하는 십자가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아담이 그러했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주인으로 섬김을 받으려고만 사용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모범에 대한 불순종이 될 수밖에 없어서 우리네 삶이나 인간관계에도 죄의 악한 기운이 스며들어올 것이고, 종내는 죽음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결국, 아담을 반면교사로 하여 예수님을 모범으로 본받고자 하면 누구나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이 귀한 삶을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가꾸어 나가다 보면 우리는 교회를 살 수 있게 되고 은총을 호흡하며 생명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법무와 검찰개혁과 관련한 소식들이 짜증스러울 정도로 넘쳐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우리 사회의 죄를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다스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죄로 인한 어둠보다 더한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줄 수 있는 선의 관심으로 교회답게 사는 삶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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