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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징표 읽기 :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는 일 - [이신부의 세·빛] 말과 이론과 전례만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겠는가?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0-25 16:15:02
  • 수정 2019-10-25 16: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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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금요일 : 로마 7,18-25ㄱ; 루카 12,54-5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징표를 읽으라고 군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숨 막힐 듯한 시대를 살던 당시 군중에게는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군사력으로 지중해 세계를 정복한 로마 세력이 식민통치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국내정치적으로는 겨우 종교의 자유만 인정받기로 하고 로마에 투항한 사두가이파가 유다교의 율법에 따라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독점하고 있었던 신정정치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자유가 없었습니다. 실제 백성의 생활과 활동에 대해서도 율법의 해석을 독점한 바리사이파가 백성을 정신적으로도 옥죄고 있어서 사상적으로도 자유가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을 상대로 하느님께 이르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셨고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다가왔다는 메시지는 로마의 지배로부터는 물론이고 사두가이들이 독점해 온 제사 질서로부터 백성을 해방시키는 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나라에서는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되 똑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 안에서 사랑을 솔선수범하신 일은 새로운 나라로서의 교회를 세우시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군중은 시대적 상황과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분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서는 대환영을 하면서도 막상 새롭게 다가왔다고 선포된 하느님 나라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아시아의 서쪽 끝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동남쪽의 넓은 아라비아 사막과 서쪽의 지중해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막에서 데워진 공기가 불어오면 날씨가 더워지고, 바다에서 증발된 구름이 올라오면 비가 올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빗대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다시 한 번 촉구하신 것입니다. 


그날그날의 날씨만큼도 시대적 상황을 읽지 못하는 군중의 위선적 행동을 대놓고 비판하셨습니다. 


로마나 사두가이나 바리사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당신의 복음 선포 활동에 담긴 의미를 도무지 읽지 못하는 우둔함을 일깨우신 것입니다. 그 당시 군중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안에도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악한 기운의 구름이 몰려오면 비를 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도 시원한 비를 맞고 싶어 한다든지, 선한 기운의 바람이 불어오면 이 바람에 따라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도 무더위를 피해 그늘로 숨어버리는 것 같은 마음의 날씨의 변덕스러움을 고백한 것입니다. 악의 유혹에 끌리는 마음과 하느님의 법을 따르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적 번뇌와 변덕스러움은 사도 바오로의 민감한 성찰로 인해 성경 속에 들어간 것일 뿐 우리도 다 마찬가지로 그것도 매일같이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고백한 내적 갈등 속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교회도 시대의 징표를 읽고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외침을 듣고 있습니다. 


식민통치는 벗어났지만 나라가 분단되고 전쟁을 겪은 민족끼리 서로 증오해 온 시절을 졸업하고 민족 화해와 통합으로 진정한 광복을 이룩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가 우리가 알아차려야 할 첫 번째 역사의식일 터입니다. 그리고 식민통치의 잔재로 독재가 자행되어 정의가 무너진 반쪽 나라에서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 과제가 두 번째 사회의식이 됩니다. 


하느님을 알려야 하는 선교 과업은 이 두 가지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고 역사와 사회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이 흐름의 목표를 사회적 사랑으로 제시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교회의 실천으로 증거 하는 일이 선교입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해서 벙어리 냉가슴 앓는 처지는 이제 졸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시대 상황을 관찰하면 해야 할 선의 행동이 보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활동을 중계방송 하듯이 세상에 전하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셨다는 것까지는 몰라도 세상 사람들도 그분이 매우 훌륭한 분이시라는 것 정도는 다 잘 압니다. 남은 것은 그분을 믿는 이들과 교회가 그분의 삶과 행동을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입으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전례로만이 아니라 실천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선교 요청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하면서 세상 사람들더러 그분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혁명적인 처신과 가르침과 실천을 보여주시고 나서 오늘 복음 말씀을 하셨어도 그 시대 군중이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말과 이론과 전례만으로 오늘날의 세상 사람들이 움직이겠습니까? 


감동을 일으키고 울림을 주는 행동과 실천이 있어야 선교가 됩니다. 세상이 소외시켜 지옥 같은 고통 속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천국 같은 기쁨을 선포해야 선교가 됩니다. 


세상을 거룩하고 사랑으로 충만하게 만들 수 있는 영적 다이나마이트가 복음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거룩하게 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사랑으로 채우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시대의 징표에 따라 사회적 사랑을 실천하면 세상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도록 바뀝니다(Peter Maurin).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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