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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공의 신비와 연대성 원리 - [이신부의 세·빛]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0-30 12:30:24
  • 수정 2019-10-30 12: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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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간 수요일 : 로마 8,26-30; 루카 13,22-30



오늘 복음과 독서에서 들으신 말씀을 생각해 보면 복음 말씀에서는 일반적인 구원론이 나오고 독서 말씀에서는 구원받은 이들이 교회 안에서 해야 할 역할과 하느님의 도우심이 언급되고 있어서 서로 보완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복음에서는 갈릴래아 지방에서 주로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중에 받으신 질문과 답변이 나오고 있는데 그분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는데도 정작 회개하고 복음대로 살고자 나선 사람들은 적었던지 질문이 이렇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이 적다는 뜻이지요.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듣고서도 응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 까닭에 대해서 지레 겁을 먹은 탓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마태오 복음의 산상설교 결론에서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마태 7,13-14)


예수님의 이 말씀을 명쾌하게 주해한 아우구스티누스나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교부는 이렇게 풀이하였습니다. ‘좁은 문’에 관한 말씀은 믿음이 부족하여 하느님의 뜻에 눈이 먼 세태를 반영하여 제자들에게 권고하신 일종의 반어법적인 말씀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좁아 보이지만 사실은 구원에 이르는 문이나 멸망에 이르는 문의 크기는 똑같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것처럼 인간의 자유의지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는 반반으로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좁은 문이라기보다는 ‘좁아 보이는 문’이라고 알아들어야 맞지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할 때 역지사지(易地思之)해서 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내재적 접근법으로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예수님께서 권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삶, 복음적인 생활이 매우 좁아 보이는 문일 수 있습니다. 그 많은 죄의 유혹을 떨쳐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는 이들의 처지에서는 죄를 짓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유혹이 다가오는 순간부터 이를 감지한 영혼이 보내는 신호가 정신을 긴장시키기 때문이고, 심하면 신체적으로도 반응이 와서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좁은 문, 아니 좁아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겁니다. 관건은 하느님이냐, 세상이냐 혹은 믿음이나 의심 내지 불신이냐의 선택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의 처지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는 믿음만 있으면 쉬운데, 그렇게 해서 들어간 좁은 문에서 하느님께 나아가기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선택의 믿음보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믿음이 더 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권하는 말씀이 여기에 적중한다고 봅니다. 성령께서 믿음이 나약한 성도들을 도와주신다는 말씀이 그러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과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담긴 이치를 통공의 진리에 관한 신비라고 이해합니다. 통공은 천상에 계신 성인성녀들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사회적 연대라고도 부르고, 사회적 사랑이라고도 부릅니다. 자유나 평등과 같은 최고선의 가치만큼이나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을 닮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연대 내지 통공은 악에 대한 저항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하지만 선을 위한 협력에서도 위력을 발휘합니다. 좁은 문을 통과해서 들어간 믿는 이들의 연대 내지 통공이 교회라는 하느님의 집을 역사 안에 세우기 때문이고, 이 교회라는 하느님의 집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몸처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회교리가 말하는 연대성의 덕목은 그리스도인의 명예입니다.


역사상 무수한 신앙인들이 이 통공의 신비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개미처럼 자기 자리에서 하느님을 쳐다보며 살다 갔습니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통공의 신비를 사회적 연대의 끈으로 체험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선업과 선행을 마치 우주 안에 떠있는 지구를 떠받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중하게 때로는 힘들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공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회교리가 말하는 연대성의 덕목은 그리스도인의 명예입니다.


연대성은,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서 막연한 동정심이나 피상적인 근심을 느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입니다. 연대성은 무엇보다도 공동선을 지향하는 덕목이고, 타인을 착취하는 대신에 이웃의 선익을 위해 투신하고, 복음의 뜻 그대로 남을 위하여 ‘자기를 잃을’ 각오로 임하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억압하는 대신에 ‘그를 섬기는’ 것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사회적 관심, 38항).


연대성을 실천하는 이들은 구원의 문에 들어선 사람들이고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서도 첫째로 부르심 받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연대를 거절한 자들은 그 덕분에 세상에서는 편할지 몰라도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는 초대받지 못하고 쫓겨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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