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죽음보다 강한 희망, 죽음을 넘어서는 연대 - [이신부의 세·빛] “죽음은 인간의 마지막 언어가 아닙니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1-01 12:33:02
  • 수정 2019-11-01 12:33:02
기사수정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욥 19,1.23-27ㄴ; 로마 5,5-11; 마태 5,1-12ㄴ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되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 ⓒ 이기우


알지도 못해서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보다 먼저 사시다가 우리를 사랑해주셨던 분들의 영혼이라면, 그래서 아직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계신 분들의 영혼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에 기도해 드려야 마땅합니다. 


세상에서는 죽음의 힘이 가장 강합니다. 세상 모든 것보다 죽음을 가장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음 이전에는 육신의 힘이 그 다음으로 강해 보입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육신을 위하는 일이 장땡입니다. 육신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그토록 돈을 모으려고 하고, 돈을 쉽게 모을 수 있는 지위를 얻으려고 어려서부터 입시공부에 매달리게 하는가 하면, 어른으로 자라서는 그 지위를 줄 수 있는 권력 주위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니뭐니해도 육신이 오래 살 수 있는 건강이 최고라고 거의 신앙고백에 가까운 말들을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육신 사정은 돌볼 수 있을지 몰라도 영혼 사정은 돌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마음의 평안만을 뚜렷한 대책이나 방법도 없이 막연하게 바랄 뿐인 것이 세상 사람들의 사정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운명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거나 있어도 그저 막연하게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겠지 하며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지요.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살면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달리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그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시고, 그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예언자들을 통해 알려주신 분이시며, 무엇보다도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어 이미 여기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는 길을 몸소 보여주시고 가르쳐주기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마지막 언어가 아닙니다. 죽음보다 강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은 죽음 이후에 전개될 전혀 새로운 삶을 기다리게 하고, 이미 여기서부터 그 삶을 준비하고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은 죽음조차도 넘어서는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연대는 우리가 언젠가 세상을 떠난다 해도 우리를 기억해 줄 수 있는 이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믿고,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보속과 희생을 아낌없이 바쳐줄 것을 희망하기에 발휘될 수 있는 인간의 마지막 언어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거룩한 능력, 그것이 희망하고 연대하는 능력입니다. 이 희망하고 연대하는 능력이 통공의 신비가 지닌 은총입니다. 또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믿는 이들은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육신 사정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기에 우리의 기억과 공감능력에 의지하여 죽은 이들이 살면서 부딪쳤던 온갖 한계와 갈등과 번뇌,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저질러졌던 죄와 허물과 시행착오들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씻어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자발적으로 보속과 희생을 바치는 특별한 날이 오늘입니다. 


이 통공의 신비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욥이 말합니다.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두었으면!” 


자신의 사연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먼저 세상을 떠나신 모든 영혼들의 대변자가 욥이라면,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 주어야 함을 희망의 이름으로 역설하는 신앙의 교사가 바오로입니다. 바오로도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기억과 희망을 연결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과 연결되었고, 죽은 이들 역시 그분 앞에서 심판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한편, 먼저 가신 이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하면서 보속과 희생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와 보속과 희생의 기준은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입니다. 여덟 가지로 제시된 이 행복을 우리만이 아니라 먼저 가신 이들도 누릴 수 있도록 통공의 신비에 따라 보속과 희생을 바치는 일, 이것이 이 위령의 날과 위령 성월에 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과제입니다. 


우리가 우리보다 먼저 가신 이들을 기억하면, 우리도 죽은 후에 우리의 뒤에 남은 이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겠지요. 그래서 완벽하지 못한 못난 우리의 삶을 탓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려 합니다. 희망은 죽음보다 강하고, 연대는 죽음조차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6195
기자프로필
관련기사
댓글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비회원 이름 패스워드 자동등록방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