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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십자가를 지어보자 - [이신부의 세·빛] 십자가의 지혜, 천국의 지혜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1-06 16:46:47
  • 수정 2019-11-06 16: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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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수요일 : 로마 13,8-10; 루카 14,25-3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시면서 함께 길을 가던 군중을 향해 돌아서서 이르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 말씀은 이미 열두 제자를 뽑으신 후, 일흔두 제자까지 전국으로 파견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써 더 많은 군중이 당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형편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열두 제자나 일흔두 제자뿐만 아니라 나머지 군중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당신의 뒤만 따라올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실천하고 전하기를 바라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야 제자들을 중심으로 메시아적 백성이 모이게 되어 하느님 나라의 빛을 이스라엘에 비출 수 있고, 그래야 이스라엘 전 백성이 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함께 길을 걷던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그러니까 정색을 하고 주목을 시킨 상태에서 말씀하신 것이고, 다만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려는 의지를 촉구하실 뿐만 아니라 이치로 미루어 생각해 보라는 권유도 하셨습니다. 탑을 세우는 공사의 비유나, 전투를 앞둔 임금의 비유가 다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권유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어쩔 수 없이 짊어지게 되는 부담스런 일이 아니라, 천국 즉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악인의 박해 때문이 아니라도 불가피하게 요청되는 희생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사랑은 희생 없이는 이룩되지 못합니다. 모든 가치 있는 사랑은 희생을 수반합니다. 


희생의 크기에 비례하여 사랑의 진실성이 결정됩니다. 만일 아무런 희생이 수반되지 않고 말이나 생각으로만 하는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거짓이거나 환상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당신 목숨을 내어놓는 희생이 뒷받침되었기에 가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인 이유는 율법이라는 것이 각자에게 자기 몫을 주려는 정의의 발로이기에 그렇습니다. 정의는 사랑을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정의는 사랑으로써만 완성되기에 사랑이 정의의 충분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도 로마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악을 저지르지 말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그것은 용서받아야 할 빚을 지는 일입니다. 오히려 사랑을 실천하여 악에 맞서고 죄를 없애십시오.” 


우리는 이미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자기 탓으로 인한 십자가도 있고 남이 우리에게 짐지어준 십자가도 있습니다. 또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자기 잘못도 없지만, 오로지 신앙 때문에 짊어지게 된 십자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십자가의 이유와 목적은 모두 한 가지, 즉 하느님 나라입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짊어지게 된 십자가라면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느님 나라가 다가올 수 있는 것이고, 남이 잘못했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라고 하더라도 그 덕분에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더 이상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길을 닦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신앙 때문에 짊어진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느님 나라가 더욱 힘차게 다가올 수 있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이치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한 신앙적 의지의 결단도 필요하고, 그에 앞서 죄를 피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이성적인 노력도 필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출세하기 위해서나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벌이는 노력만큼이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합리적 목표와 과정계획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한 목적이 천국을 내세에 있어서나 현세에 있어서 가기 위한 것이라면 이 천국에 합당한 방법을 모색해야 마땅하다는 말씀입니다. 


흔히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주도적이 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데 있어서도 마지못해 하지 말고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고 주도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는 끝을 보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어떤 평판을 받고 싶은지를 생각해서 지금 계획을 세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셋째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매사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중요한 것부터 미리미리 준비해야 급한 일이 생겼을 때에도 낭패를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넷째는 상호간에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모색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십자가도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관계된 사람들끼리의 갈등을 조정해야 하고 화해를 모색해야 하는데, 미궁에 빠진 듯이 보여도 잘 살펴보면 반드시 모든 이해당사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 누구도 배제시키지 않을 수 있는 제3의 해결책이 꼭 숨어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끝까지 찾으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먼저 우리가 이해하고 나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공감능력이 발휘되어야 갈등도 쉽게 풀리고 협력도 쉽사리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모두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시너지 효과를 내라는 것이지요. 


일곱째는 끊임없이 쇄신하라는 것입니다. 몸은 노동과 운동으로, 정신은 독서와 수강으로, 영혼은 기도와 봉사활동으로 부단히 하느님의 영에 따라 언제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합리적이면서도 실용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천국을 사는 지혜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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