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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 대한 무지 - [이신부의 세·빛] “현대를 살고있는 한국인들은 어떠합니까?”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1-15 11:43:28
  • 수정 2019-11-15 11: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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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간 금요일 : 지혜 13,1-9; 루카 17,26-37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한처음부터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지혜서 당시의 사람들에게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닙니다. 기원전 3세기 무렵에 그리스 문명권 속에서 살던 유다인들이 히브리적 전통을 배우지 못하고 무신론적 사조와 생활양식에 물들어가는 유다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신앙에 입각한 지혜를 전해주려고 쓴 지혜서는, 그 제목부터가 그리스인들이 좋아하던 지혜로 삼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이나 바람, 공기나 별, 물이나 하늘의 빛물체들이 세상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철학들로 지성을 삼고, 인간 세상에 흔히 발견되는 군상을 신들의 모습이라고 투영하여 종교로 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무신론적 철학사유로 인간 이성이 발달한 것도 사실이고, 다신론적 신화로 인간 감성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예술이 발달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인류문명을 주도하는 제반 학문들이 발달할 수 있었고 이에 바탕하여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민주주의 체제가, 산업적이고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자본주의 체제가 생겨날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도 생겨났고, 인간의 존엄성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연대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확인하게 된 것도 빼놓을 수 없지요.


하지만 오늘 독서인 지혜서 13장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바는 이 두 체제의 씨앗이 된 당시 그리스 문명이 하느님께 무지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정작 그것들을 창조하신 분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인 루카 복음 17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심판 날에 일어날 일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노아가 살던 시절에 당시 인류를 홍수로 심판하셨을 때에도 그러했지만, 아브라함과 롯이 살던 시절에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심판하시고자 하셨을 때에도 사람들은 심판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그저 먹고 마시며 장가들고 시집가는 등의 일상사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두 시대에 공통적인 역사적 교훈은 심판을 앞두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시대의 징표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를 굳이 상기시키면서 예수님께서 강하게 암시하신 새로운 시대적 징표는 곧 다가올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이 사건이 막상 일어났을 때에 알아차리도록 미리 예고하신 것인데, 여기에는 당신께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시며 서로 사랑하는 삶 속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여 계심을 일깨우신 것임을 잊지 말라는 당부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선포의 극적인 결말이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


하지만 당시 유다인들은 물로 심판받던 노아의 때나 불로 심판받던 롯의 때처럼 시대의 징표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일상사에 매몰되어 살아갔을 따름이었습니다. 병든 이들을 고쳐주거나 마귀 들린 이들을 제 정신 차리게 해방시켜주는 기적들을 일으키셨을 때에도 신기하게만 바라보았을 뿐 그것이 유다인들이 조상 대대로 믿어오던 하느님께서 드디어 현실 역사에 개입하시기 시작하셨다는 징표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지만,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거나 부활하는 일이 일어날지라도 아마도 당시 유다인들은 지금까지로 미루어보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라고 내다보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일러두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루카 복음사가가 이 중요한 말씀을 놓치지 않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서의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피조물을 통해서 하느님의 존재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고, 루카가 전해주고자 했던 바는 시대의 징표 특히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기적들과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어떠합니까? 하느님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합니까? 또 한국의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의 징표를 지나치지 않고 제대로 읽고 있는 것입니까? 혹시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감탄할 뿐 보이지 않는 진리에 대해서는 까막눈인 것은 아닙니까? 또 혹시 고대 유다인들처럼 하느님께서 우리 역사에 개입하시는 시대의 징표에는 눈이 먼 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상사에만 매몰되어 있는 처지는 아닌지요? 유감스럽게도 이 물음들에 대해서 전부, 그리고 한국인들이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나 한국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아니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피조물에 대한 경탄은 창조주께 대한 경탄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창조주께 대한 경탄은 과거 오랜 옛날에 지어놓으신 피조물들에 대한 경탄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네 역사에 개입하고 계시는 징표들에 대한 경탄으로 이어져야 마땅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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