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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퍼센트 믿음이 신적 능력을 이끌어낸다 - [이신부의 세·빛]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1-18 15:38:06
  • 수정 2019-11-18 15: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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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월요일 : 1마카 1,10-15.41-43.54-57.62-64; 루카 18,35-43


하느님을 보다


오늘 독서는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에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그리스 풍습에 따라 유다교를 박해함으로써 일어난 마카베오 전쟁의 배경을 전합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풍습을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쳐 퍼뜨리고 그리스어로 공용어를 삼았습니다. 그래서 유일신이시오 인격신을 믿어 오던 유다인들은 율법에 따라 지켜온 관습을 버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발견되는 대로 율법서를 찢어 불태워 버려야 했습니다. 이런 박해의 시절에 그리스인들이 강요한 이런 박해 행위에 대하여 차라리 죽기로 작정한 유다인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문화 충돌 현상은 우리 역사에서도 일어났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하느님을 섬겨 오기는 했지만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에 가리고 중국에서 들여온 유학에 가려서 알지 못하던 하느님을 서양에서 유래한 천주교를 통하여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유학을 숭상하던 조선 왕조와 유림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리고 박해를 받게 된 천주교 신자들은 죽을지언정 천주님을 배반할 수는 없어서 치명했습니다. 그 박해와 치명의 역사가 백 년입니다. 그 신앙 선조들의 증거와 희생으로 한겨레는 이 땅에 살아온 역사 반만 년 만에 비로소 하느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보다



오늘 복음은 예리코의 눈먼 이가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뜨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분을 ‘다윗의 자손’으로 부른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절박하게 부르짖던 그의 외침이 시끄럽다고 사람들은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고, 그분 앞에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눈먼 사람이 그토록 절박하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 줄을 모르셔서가 아니라 그가 자기 입으로 청원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그에게 베푸실 자비가 그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고 과연 그는 즉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눈먼 그에게 직접 자기 입으로 청원을 할 수 있도록 물으시고 그가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원한 대화와 만남을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보조성의 원리라고 가르칩니다. 비록 눈먼 그를 볼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시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그분의 신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의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었지만 그분의 능력이 현실화될 수 있는 계기는 그가 두 번이나 큰 소리로 그분을 메시아로 고백하면서 청원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었던 데 있었습니다. 예리코 소경이 눈을 뜨는 데 있어서, 예수님의 신적 권능이 차지하는 비율이 비록 99%라 하더라도 나머지 1%에 해당하는 그의 믿음이 없었다면 그는 눈을 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 1%의 믿음이 99%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이끌어낸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보다


이 땅에서 천주교 박해가 종식된 이후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얻었고, 이에 힘입어 개신교회도 들어와서 교세를 늘렸습니다. 그 결과 백 여년이 흐르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은 오백 만을 헤아리고 개신교 신자들은 천 만 성도를 자랑할 정도가 되었지만, 아직도 이 땅의 겨레는 복음이 들어오기 전 ‘천지신명’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던 하느님을 알고 믿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일신이시며 인격신이시고 사람들 한가운데 내려와 계시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아주 적어 보입니다. 다수의 믿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현세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다윗의 자손이시고, 내세에서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 주실 메시아이신 정도로 기복적인 신앙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일제강점기와 분단, 전쟁과 독재를 겪으면서 세상의 빛이 된다거나 이웃을 위한 사랑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정도로까지는 신앙이 진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 오백 만, 개신교 성도 천 만이 넘는다는 이 시대에도 우리나라의 역사는 그저 물질적으로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부러움을 사는 성장을 이룩하고 있을 뿐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세상의 죄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 믿지 않는 이들보다 더 낫다는 평판이 아직 낯섭니다. 천주교 신자들의 교회에서든, 개신교 신자들의 교회에서든,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는 이들이 아직 세상보다 대조적으로 빛난다거나 정신적으로 깨어있다거나 자부할 형편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미사의 기도문에 도입된 예리코 소경의 기도가 더 절박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인간이 되신 하느님께서는 믿는 이들의 믿음을 통해 역사에 드러나셔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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