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5일, ‘형법 정의와 기업’(Criminal Justice and Corporate Business)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20회 형사법국제학회(Association International de Droit Pénal, AIDP) 참석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하나의 견해로 가장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차별·혐오 발언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형법은 현실을 반영해야
교황은 “형법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법치의 온전한 효력을 침해하는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형법이 현실과 관련한 자료를 괄시한 탓에 추측성 지식에 불과한 외관을 갖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형법이 민주주의를 온전히 지키지 못한 상황 속에서 “시장의 우상화”와 “형법적 이상의 위험성”이 도래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오늘날 특정 산업은 국가보다도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한다(찬미받으소서 196항 참조)”고 강조하며 “민주주의 제도와 인류의 발전 그 자체를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법학자들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법은 사용자의 편이 되어서는 안 돼
프란치스코 교황은 “형법에서 가장 흔한 태만 중 하나는 가장 강력한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특히 기업의 대형범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아예 무시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선택적 처벌의 결과”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내가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형법은 불균형적인 상황을 이용해 집단의 안녕을 희생하여 지배적인 지위를 사용하는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면서 “예를 들어 국가채무증권(국채) 가격이 투기를 통해 인위적으로 낮아짐에도, 이것이 국가 전체의 경제 상황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 것이라는 고려를 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형법적 대응은 범죄가 발생한 뒤에야 이뤄지고, 피해를 복구하거나 그러한 범죄의 재발을 막지 못하며 저지 효과가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고 형법의 구조적인 선택적 태도로 인해 처벌 기능이 주로 가장 취약한 사회 분야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로 인한 피해가 생태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진다고 강조했다.
배척과 혐오의 문화에서 비롯된 동성애자 차별은 나치즘
교황은 형법의 이러한 선택적 처벌, 불균형에 대한 발언을 정리하면서 “재판 전 구금의 남용, 의도치 않은 폭력의 조장, 배척과 혐오 문화 그리고 법전쟁”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판 전 구금의 남용에 대해 교황은 “예방적인 차원의 구금은 특수한 상황 없이 또는 과도한 기간에 걸쳐 부과되는 경우에 모든 피고가 최종 유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죄가 없다고 취급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의도치 않은 폭력을 조장하는 것에 대해서 “정당방위 제도 개혁안이 몇 국가들에 적용되면서 이러한 제도가 치안 인력이 저지르는 범죄를 준법적인 업무 수행으로 정당화한다는 주장이 있어왔다”고 지적하며 “법조계는 처벌을 부추기는 선전이 폭력이나 과도한 무력의 사용을 조장하는 행위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 번째로 배척과 혐오 문화에 대해 “일회용문화(throwaway culture)가 혐오 문화로 변질되는 심각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며 “나치즘의 상징과 그러한 식의 행동들이 다시금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백컨대, 어떤 교단의 대표나 정부 대표의 연설을 들을 때 1934년, 1936년 히틀러의 연설을 (듣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이러한 연설들은 전형적인 나치즘 행위로, 오늘날 유대인, 집시, 동성애 성향을 가진 이들을 박해하는 행위와 더불어 배척과 혐오 문화의 부정적 모델”이라고 규탄했다.
교황은 형법이 “권력을 행사하려는 이들에게 득이 되는 정치혐오의 감정을 부추기는데 부패와의 전쟁이 악용되고 있다”면서도 “동시에 온갖 범죄를 감추는데 사용되는 조세 피난처는 부패 또는 조직적 범죄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의아하다”고 꼬집었다.
‘회복적 형법 정의’(restorative criminal justice)의 실현을 강조한 교황은 “형법이 냉소적이고 비인간적인 메카니즘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균형을 갖추고 정의에 헌신하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형법을 포함한 모든 법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든 피해자든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설을 마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에서, 이러한 형태의 정의는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온전히 육화되는데, 예수께서는 중상모략과 죽음으로 이어진 폭력을 당하셨음에도 부활 하실 때에 평화, 용서 그리고 화해의 메시지를 가지고 오셨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