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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 없는 영성은 현실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해 - [이신부의 세·빛] 암브로시오를 기억함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2-06 18:03:55
  • 수정 2019-12-06 18: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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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이사 30,19-21.23-26; 마태 9,35-10,1.6-8 



오늘 교회는 암브로시오 성인을 기억합니다. 4세기경에 로마인 가문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주교 학자로 활약한 그는 사제로 서품되기 전에 법학을 공부하고 로마제국의 공직을 맡아 봉사했던 경험을 살려서 정통 신앙을 수호하기 위하여 아리우스 이단과 대결하는 한편, 전례와 성직을 개혁하고 황제의 간섭을 물리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훌륭한 인품과 탁월한 강론을 익히 알고 있던 모니카는 마니교 이단에 빠져 있던 아들 아우구스티노를 그에게 맡겨 교회의 큰 일꾼으로 자라나게 했던 유명한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사상이 근 천 년 동안이나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대혼란이 밀어닥쳤던 서방 가톨릭교회를 유럽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이끌었음을 생각하면, 그를 이끌어준 암브로시오의 성품과 신앙이 아우구스티노 이상으로 돋보입니다. 


암브로시오 시대에 로마제국에서 신앙에 대한 박해는 종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교로까지 인정되어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기는 했지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단들이 출몰하여 대중의 신앙을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 분명하게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단 가운데 아리우스 사제가 주장한 내용은 신자 대중의 이목을 끌만큼 출중한 바가 있었습니다. 키프로스의 주교 에피파니우스에 따르면, 아리우스는 키가 크고 군살이 없는 몸매에 준수한 용모와 공손한 말투를 썼으므로 여성 신자들은 그의 정중한 예의와 외모에 홀렸고 남성 신자들은 그의 지적 탁월함에 끌렸다고 합니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동등하지는 않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가장 하느님을 닮으신 분이시기는 하지만 피조물로서 세상이 창조될 때와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든가 영원하신 분이라고까지 높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이단으로 공식적으로 파문당하기 이전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믿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던 박해시대가 끝나고 순교의 열풍은 자취를 감추었던 그 시대에 황제와 고관대작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사회적으로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다 보니 아리우스의 이런 예수관은 일견 합리적인 구석이 있어 보였고 쉽게 이해하고 쉽게 믿고자 했던 세태와 어울렸던 것입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리우스의 이런 이단적 주장에 맞서서 아타나시우스가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심을 논박하다가 박해를 받기도 했는데, 암브로시오 역시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갖추신 분이시며 따라서 하느님은 성부께서 성자를 이끄신 성령과 함께 삼위일체이심을 아리우스 못지않은 성품과 치열한 논리로 강론함으로써 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당대 지성인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아리우스의 후예들은 지금도 많아 보입니다. 쉽게 믿고자 하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무리들이 그들입니다. 하느님을 가장 빼닮으신 인간으로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으로 예수님을 믿기가 오늘날에도 그리 쉬운 노릇은 아닙니다. 그분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믿으면서도 신성에 따르는 영성과 함께 인성에서 우러나오는 현실적 투신의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동시에 갖추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려워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깊이 있는 영성과 현실적인 의식은 한편으로는 수직과 수평이 만나는 십자가와도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인체의 두 발과 같아서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짝입니다. 


▲ ⓒ 가톨릭프레스 자료 사진


영성 없는 투신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투신 없는 영성은 현실을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소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성으로는 복음선포에 모든 것을 걸고 투신하고 계셨던 그분이 협력자들을 필요로 하신다는 말씀이고, 그러나 당신의 인간적인 요소로서가 아니라 당신의 신성에 바탕하여 하느님께 그 협력자들을 청하라고 제자들에게 요청하신 것입니다. 그 시대에나 지금이나 성소자들은 항상 부족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기 마련인” 성소자의 만성적인 부족현상을 타개하는 정석은 신성과 인성의 결합에서 나옵니다. 영성을 깊이 갖추되 투신을 겸손되이 그러나 꾸준히 감내하는 역사의식 내지 사회의식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전례에서 언제나 성령으로서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고, 이 현존에 이끌리고 이 현존 속에서 세상에 투신하고자 하는 일꾼들이 나오도록 성직 개혁은 물론 수도생활의 쇄신과 평신도 일꾼의 양성이 오늘날에도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을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칩니다. 예수님을 쉽게 이해하고 편히 믿고자 하는 아리우스 후예들도 득실거립니다. 그래서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그리고 두루 갖추신 예수님의 일꾼들이 복음의 씨를 착실히 뿌려야 합니다. 현실의 장벽에 안주하지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함께 일할 성소자들을 보내주시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살아있는 그리스도 신앙으로 쇄신되어 그리스도를 증거할 흐름을 끊기지 않게 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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