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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사회교리 제1원리, ‘인간 존엄성’ - [이신부의 세·빛] “너, 어디 있느냐?”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2-09 17:47:07
  • 수정 2019-12-09 17: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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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 창세 3,9-15.20; 에페 1,3-6.11-12; 루카 1,26-38



우리 교회는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고 이번 주간을 사회교리 주간으로 보냅니다. 인권 주일의 취지를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따라 신자들에게 알리려는 교회의 배려이고, 이러한 마음의 준비로써 우리는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이 대림시기의 전례적 은총도 아울러 누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빛을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비추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 첫 날인 오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이어서, 무염시태 교리와 강생 교리와 관련하여 사회교리의 주요원리 가운데 제1원리인 ‘인간 존엄성’의 진리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염시태(無染始胎)란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뜻하는 것이고, 강생이란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뜻하며, 인간 존엄성이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이란 존재가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존엄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기본 개념을 역사적으로 부여된 의미로 부연하여 설명해 보겠습니다. 


마리아는 요아킴과 안나의 딸로 태어났는데, 이 부부는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다가 마리아를 잉태했습니다.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요아킴과 안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느님께서 그 부부가 낳을 딸을 세상에 구세주로 보내실 당신 아드님의 어머니로 간택하시고 이 부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한편, 구세주의 어머니의 격에 맞게끔 세상의 죄로부터 물들지 않도록 특별히 보호하셨다는 역사적 의미가 무염시태 교리에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잉태된 마리아는 나자렛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당시의 혼인 풍습대로 15세 경에 유다 지파로서 다윗의 후손인 같은 마을의 목수 노동자인 요셉과 정혼하고 나서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 천사는 성령의 기운으로 구세주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전갈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후 마리아는 요셉과 혼인하여 부부가 되었고 아기를 해산할 즈음에 로마 황제가 내린 호구조사령 때문에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서 요셉의 아내이면서도 실제로는 동정의 몸으로 성령으로 잉태했던 아기를 낳았습니다. 이것이 강생의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강생의 신비에서 인간 존엄성의 진리가 파생됩니다. 


이 진리는 인간이 지닌 신체라든가, 정신작용이나 마음 씀씀이가 유난히 거룩해서 인간 존재가 존엄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체는 다른 짐승들보다도 약하고 보잘것없고, 정신작용이나 마음 씀씀이 역시 얼마든지 악할 수 있습니다. 인체나 정신 또는 마음보다는 인간에게 부여된 영혼이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안테나 구실을 해서 하느님의 영을 받도록 설계된 덕분에 마음 씀씀이나 정신작용 그리고 신체적 활동 모두 하느님을 닮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기회가 부여되어 있어서 존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지닌 어떤 조건 때문에 존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렇게 되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존엄한 존재가 됩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져 있는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회와 함께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유를 남용해서 악에로 기울면 사람은 사탄처럼 되거나 짐승보다 못한 처지로 떨어질 수도 있고, 이 자유를 선용해서 선을 지향하면 사람은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느님을 닮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천사보다 더 귀하고 나은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책임이 크고 막중합니다. 자유가 귀하고 소중한 만큼의 계약 조건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창세기 3장의 독서는 인간의 자유가 남용되고 난 후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고 심판하시며 다시 기회를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창세기는 창조 당시나 쓰여질 당시나 읽는 지금이나 시대를 초월해서 들려주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일러주는 이야기입니다. “너 어디 있느냐?” 하는 하느님의 물음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나무 열매를 따먹고 난 아담에게 건네신, 또 지금도 건네시고 있는 현재진행형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닌 겁니다. “너 스스로 네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네가 무엇을 했는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유를 거저 부여받은 처지에서 행한 행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스스로 판단해 보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던지신 말씀입니다. 태산보다 더 무거운 심판의 언어이기에 언제나 무거운 마음으로 들어야 하지요. 하지만 이 말씀의 의미는 심판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아예 관계를 끊어버리고자 했으면 묻지도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느님의 배려를 어기고 죄를 지은 아담이지만, 천금보다 더 귀한 기회를 다시 주시려고 묻는 사랑의 언어이기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말씀이지요. 


오늘 들으신 복음은 무염시태에 관한 내용이 아닙니다. 성모영보에 관한 내용입니다. 다소 엉뚱하지요. 하지만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염시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시절 이래로 신자들은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믿어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를 잉태하시고 기르셨으며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 구세주의 뜻에 따라 살아가신 마리아시라면, 그분의 믿음과 생애를 보더라도, 세상에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하느님께서 그 격에 맞게 보호하셨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신자들 안에서 뜨거운 신심으로만 전해져 내려 왔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천8백여 년입니다. 


우리나라의 박해시대에 선교사들을 파견한 프랑스 가톨릭교회의 신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이 성모무염시태 신심을 간직해 온 엥베르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사제로 서품 받은 후 중국 사천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에, 브뤼기에르 주교의 후임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때가 1836년입니다. 이 당시 조선천주교회는 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있던 브뤼기에르가 제1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조선교구로 설정된 직후였으나, 이미 주문모 신부를 파견했던 북경교구의 주보를 따라서 요셉 성인을 주보로 모시고 있었고 주 신부의 치명 이후 별다른 선교적 보호조처도 하지 않으면서도 정신적으로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었던 북경교구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엥베르는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으로서 조선에 밀입국하면서 교황청에 조선교구의 주보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로 변경해 줄 것을 청원하였습니다. 또한 이참에, 조선교회가 독립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입국 길을 돕지도 않고 방치함으로써 결국 브뤼기에르가 길에서 죽게 만들었던 북경교구로부터 명실상부하게 독립도 하고, 무염시태의 은총으로 박해가 하루빨리 종식되거나 혹은 박해 속에서 배교의 위협을 받는 교우들이 무사히 치명하는 은총을 입기를 바라는 간절한 지향에서였습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엥베르 주교의 청원을 받아들이면서도 북경교구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성요셉과 함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조선교회의 공동 주보로 승인해 주었습니다. 이때가 1841년입니다.


그런데 무염시태의 신비가 정식 교리로 선포된 때는 1854년입니다. 그 이전까지 교황청에서는 무염시태를 교리로 반포하기를 주저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신학자들도 반대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죄에 물든 채로 태어난다는 원죄 교리와 부딪치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죄의 보편성과 피조물의 불완전성에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신학적 확신 때문에 신학자들이 반대해 온 것이고 교황청에서도 주저했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대 신학자조차도 반대했는데, 당시 교황 비오 9세는 신학자들과 추기경단의 자문을 받아 “마리아께서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잉태되셨다”고 정식 믿을 교리로 반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때여서, 교황청의 이 발표를 전 세계 가톨릭신자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반포 4년 후인 1858년에 프랑스 루르드에 베르나데트 소녀에게 발현하신 성모마리아께서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Immaculata Conceptio)이라고 스스로 밝혀주셨습니다. 라틴어도 모를 뿐만 아니라 이 교리가 반포된 줄도 몰랐던 가난한 물방앗간집 초등학생 나이의 소녀 베르나데트는 곧바로 이 사실을 자신의 본당 신부에게 보고하였고, 본당 신부는 교구장에게 보고함으로써 이 발현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황폐한 언덕 아래 골짜기였던 마사비엘 동굴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셨고, 이 샘물로 몸을 씻고 불치의 병이 나은 기적이 속출하자 의료적인 검증을 치밀하게 거친 끝에 무염시태 메시지를 확인해 주시려고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것임을 비오 9세 교황도 공식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가 발현 후 4년이 지난 1862년입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마리아에게 이렇게 과분한 은총이 주어졌음을 믿을 교리로 확정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루르드에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시어 그 교리가 참됨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교리를 인간의 이성으로 논증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 과정을 영화화하도록 원작 소설을 쓴 프란츠 베르펠은 2차 세계 대전 중 나치군을 피해 루르드 마을에서 피신해 있으면서 들은 바를 바탕으로 이 영화의 시작 부분에 이런 자막을 띄웠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설명도 필요없지만,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설명을 해 주어도 알아 듣지 못한다”. 


조선 교회에 박해가 종식되고 신앙의 자유를 얻고 나서 명례방 언덕 위에 성당을 짓고 축성하던 1898년에, 당시 교구장 뮈텔주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성당을 봉헌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가 있는 이 성당의 종교적 명칭이 ‘무염시태 성당’이 되었습니다. 행정상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교회’에서 세운 성당이 ‘무염시태 성당’인 것입니다. 결국 무염시태 성모 마리아께서는 명동성당의 주보성인이시자 또한 요셉 성인과 함께 한국천주교회 전체의 공동 주보성인도 되시는 셈입니다. 


하느님께서 비천한 운명을 지닌 인간이 되어 오시고, 그를 낳으신 마리아가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보호하셨다는 이 신앙의 역사가 말해주는 바는 그만큼 인간이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 존엄성은 인간의 품위와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뜻합니다. 존귀하게 살아가야 하고, 다른 사람을 존귀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길입니다. 이것이 가톨릭 사회교리의 제1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거나 유린되는 모든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원리를 방어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이 원리의 실현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그 어떤 제도나 법률도 개혁해야 한다는 점에서 는 진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의미를 종합해서 간추리자면, 인간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를 원하시며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원하실 만큼 존귀한 존재이며, 하느님을 가장 닮으신 존재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한 그 어머니 마리아는 잉태될 때부터 원죄로부터 보호를 받음으로써 세상의 죄악에 물들지 않는 은총을 받으셨고, 이 강생의 신비와 무염시태 교리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고, 이 진리가 위협당하고 무시당하는 세상의 모든 죄악 현장에서 싸워야 하며, 그리하여 이 진리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이러한 투쟁의 기반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이 충분히 실현되는 장으로서 교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믿는 이들이 존엄한 존재로 서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하고, 이 인간 존엄성의 장을 세상 속으로 퍼뜨려나가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과제입니다. 또한 새로운 인간 존엄성 유린의 죄악을 예방하기 위해서 인간 존엄성을 구현하지 못하고 차별하는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이 있다면 평소에 개혁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까지 교회의 과업에 포함됩니다. 하느님께서 오늘날의 아담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끊임없이 “너,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 존엄성을 위한 이러한 투쟁과 선포와 그리고 예방 노력에 인류의 미래와 행복 그리고 구원까지 달려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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