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하느님 백성의 조건, 섭리를 믿음과 하느님께 봉헌함
  • 이기우
  • 등록 2019-12-18 18:14:01
  • 수정 2019-12-18 18:14:35

기사수정


대림 제3주간 목요일(2019.12.19) : 판관 13,2-7.24-25; 루카 1,5-25



오늘 독서인 판관기가 소개하는 인물은 단 지파에 속한 삼손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판관이 되기까지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섭리가 있었습니다. 불임부부였던 삼손의 부모는 그 섭리로 아들을 잉태할 수 있었는데, 하느님께서는 삼손이 어려서부터 당신께 봉헌되기를 바라셨기에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이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그래야 필리스티아인들의 압박에서 동족을 구원할 판관으로 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 같은 탄생과 하느님께 바쳐진 아기라는 점에서 삼손과 요한은 닮았습니다. 두 사람의 부모는 다 같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불임부부의 처지였다가 하느님께서 섭리적으로 개입하셔서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성장하여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자연의 이치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가 드러납니다. 자연현상에서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간현상에서도 섭리가 작용하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자연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인간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간에게는 자연과 달리 자유와 믿음이 함께 주어졌기 때문에 믿음으로 자유를 선용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선택될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자연의 이치를 발견해 내는 과학적 이성과 진리는 사람들 사이의 일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차리는 신학적 이성과 진리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과학의 진리와 신학의 진리는 모두 다 같이 하느님의 손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삼손과 요한이 태어나기까지 특별한 섭리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일종의 징표로 제시하는 성서의 가르침은, 그들만이 아니라 사실은 모든 사람이 삼손과 요한처럼 하느님의 섭리로 잉태되고 탄생될 수 있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쓰인 것입니다. 따라서 불임부부에게서가 아니라 자식을 많이 낳을 수 있었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 어느 누구도 삼손이나 요한처럼 귀한 존재입니다. 문제는 이 섭리를 알아차리고 하느님께 봉헌하려는 믿음을 발휘하려는 이성과 의지입니다. 


섭리를 알아차리고 그 섭리로 말미암아 얻어진 은총의 산물을 다시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이끄는 것이 성령이십니다. 그럴 때라야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빛을 발합니다. 우리네 양심이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풀 한 포기와 바람 한 점에도 원인이 있어서 생겨난 것이듯이, 우리의 존재와 역할은 물론이고 우리의 깨달음과 실천에도 하느님의 섭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하게 작동되고 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창조의 신비 앞에서 종종 사람들은 겁에 질려 마음을 닫아버리곤 하기 때문에, 삼손과 요한의 아버지들에게 나타난 주님의 천사는 첫 마디에,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달래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분의 섭리를 외면하게 되는 자유의 남용현상이요 양심의 마비현상입니다. 


양심이 살아있고 자유가 선용될 수 있는 믿음의 사람, 믿음의 백성이 하느님께는 절실히, 그리고 절박하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종종 주님의 천사들을 보내시어 그러한 현실을 일깨워주십니다. 이 섭리적 현실은 물이나 공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도 하지만 생명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물질입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값이 매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귀한 물도 “물 쓰듯이” 낭비하는 일이 아주 흔하게 일어납니다. 그래도 하느님의 섭리는 그분이 계신 높은 곳에서 우리가 사는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흐릅니다. 


공기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명체에게는 단 한 순간도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물질입니다. 그 공기 안에는 산소가 21% 가량 함유되어 있는데, 이 비율은 매우 절묘한 비율입니다. 이보다 조금이라도 산소가 많아지면 산화현상이 촉진되어서 모든 쇠가 쉽게 녹슬고 모든 생명체가 쉽게 노화될 것이며 자연에는 늘 자연발화 된 화재가 이 세상을 태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조금이라도 산소가 줄어들면 호흡하기가 어려워지며 생명현상에서 필수적으로 생산되어야 할 호르몬 같은 생리물질들이 인체 내부의 균형과 순환을 조절해 줄 수 없게 될 것이어서 인류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늘 우리가 공기를 호흡하면서 생명현상을 유지하면서도 자칫 그 고마움을 잊어버린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섭리는 물과 공기를 닮았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섭리를 알아차리지 못함을 두려워하십시오. 


하느님 백성, 메시아적 백성이 누려야 할 이 귀한 섭리적 현실을 일깨우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진복팔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참된 행복을 무려 여덟 가지나 펼쳐 보이셨습니다. 그 여덟 가지나 되는 하느님 나라의 행복 중에 돈을 주고서야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믿음 아닌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오로지 믿음만 있으면 얻을 수 있는, 또 이미 누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믿음 없이 살아가고 있는, 또 믿어도 건성으로 믿는 바람에 세속에 물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대조적인 삶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교회의 대조적 성격이요 그리스도인의 다르게 살기 교과서입니다. 이러한 대조적이고 섭리적인 태도는 믿음으로 인한 긍정적 마인드로 살아감으로써 세상에서 성공하자는 개신교식 캠페인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억지로 긍정적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결코 아니고, 이미 작용하고 있는 엄연한 이 섭리를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섭리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섭리를 알아차리지 못함을 두려워하십시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