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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인 우리는 전체인 하느님을 잃어버렸다
  • 이기상
  • 등록 2019-12-23 10: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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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이 없음, 텅빔, 빈탕과 하느님을 함께 설명하는 부분들을 정리하여 구별지어 보도록 하자. 다석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본디 이름이 없다. 하느님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다. 하느님에게 이름을 붙이면 이미 신이 아니요 우상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름할 수 없는 하느님을 다양하게 불러왔다. 그러한 다양한 부름 속에는 부르는 쪽의 관점이 드러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임의적인 시각이 아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보아야 할 것, 이름해야 할 것의 말 건네옴에 대한 인간 쪽의 대답인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다양한 ‘이름’들을 고찰하면서 거기에서 말 건네오는 하느님의 얼굴들을 드러내보도록 하자. 


1) 하나님 : 절대공, 단일허공, 무극으로서의 한ㆍ(한아, 하나, 한 나[大我])님


▲ 르네 마그리트 < The delights of landscape >


하나이며 전체로서의 하느님을 우리는 ‘하나님’이라 이름 할 수 있다. 우주란(宇宙卵)이 생기기 전의 절대허공, 태극 이전의 무극을 상정하여 보자. 태극이 전개될 수 있는 가이 없는 절대공의 상태 내지는 마당, 아직 아무런 존재자도 등장하지 않은 텅 비어 있음, 빈탕한데, 무엇으로도 막혀 있지 않은 확 트여 있음,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절대 가능성의 상태가 태극 이전의 무극일 것이다. 


논리학의 용어를 빌린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아무런 내용도 품고 있지 않은 순전한 형식 규정이다. 근본구조를 위한 바탕이다. 아직 아무런 갈라짐과 나뉨이 없기에 그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로서 단일하고 온전하며 전체다. 그야말로 없음 그 자체이며 거룩함 그 자체이다. 하나님은 태극의 유래로서의 무극, 있음의 유래로서의 텅빔(없음)을 바탕으로 하여 그 안에서 전개되는 모든 있음의 사건까지도 포함한 하나이며 온전한 전체를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가 거기에서 비롯되어 나오는 절대적 원천으로서의 ‘한ㆍ’이다. 모든 개체로서의 ‘제나’들을 다 자기 안에 안고 있는 큰 나로서의 ‘한 나[大我]’이다. 다석은 이렇게 말한다.


“단 하나밖에 없는 온통 하나(전체)는 허공이다. 색계는 물질계이다. 색계는 환상이다. 나는 단일 허공을 확실히 느끼는데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느껴진다. 단일 허공에 색계가 눈에 티끌과 같이 섞여 있다. 색계에 만족을 느끼면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을 찾을 생각도 못한다. 색계는 허공에 딸려 있다. 허공은 우리 오관으로 감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공은 무한하다. 잣 알 하나를 깨뜨리니 속이 비었다는 그따위 허공이 아니다. 우리는 전체인 단일 허공의 존재(하느님)를 느껴야 한다. 참(眞)이란 허공밖에 없다. 물질인 있음(有)의 색계는 거짓이다.” 


물질이 아닌 허공은 청정하고 거룩하다. 다석은 절대공(絶大空)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허공은 맨 처음 생명의 근원이요 일체의 근원이다. 처음도 없고 마침도 없는 하느님이다. 허공은 우리의 오관으로 감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공은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다. 잣알 하나 깨어 보니 빈탕이라는 그따위 허공이 아니다. 단 하나의 존재인 온통 하나가 허공이다. 환상의 물질을 색계라 한다. 유일 존재의 허공에 색계가 눈에 티끌과 같이 섞여 있다. 허공은 하느님의 맘으로 느껴진다. 허공을 석가나 장자가 얘기했는데 이것이 이단시되었다.”


하나이면서 큰 것은 허공(虛空)이다. 그저 허공이 아니라 중심은 있으되 가장자리가 없는 공(球)과 같은 무한한 허공이다. 이 일대(一大)의 허공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 허공에 유한우주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허공을 무한우주라고 말할 수 있다. 천체(별)로 이루어진 유한우주는 무한우주 없이는 팽창할 수가 없다. 이 무한우주인 허공만을 노자는 무극(無極), 허극(虛極)이라고 하였다. 다석은 이렇게 말한다. 


“이 허공에 가야 평안하다. 허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 태공(太空)이다. 일체가 거기에 담겨 있다. 모든 게 허공에 담겨 있다. 이걸 믿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대(多大)라는 것은 무한 허공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천체까지를 말한다. 허공은 별을 모아 놓은 곳간과 같다. 허공과 천체들을 합해서 말할 때 태극이라고 한다. 태극이 음양이라고 하는 것은 태극의 내용인 천체들이 상대성을 띄고 있어 변화한다는 뜻이다. 태극의 본체인 허공은 변할 리가 없다.


“하느님은 무한한 공간의 큰 늘(常)이요 한 늘(常)인 영원한 무한우주다. 우리 머리 위에 받들어야 할 님이시라 한우님이시다.”


참[眞]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다. 빈탕(허공)에 가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거짓이다. 빈탕이 참이다. 생각해보면 존재하는 것은 허공뿐이다. 모든 천체 만물은 허공 속에 날아다니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빈탕 허공이 천체와 만물을 창조하고 지양한다. 빈탕 허공이 순환운동을 하는 것은 빈탕 허공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허공이 살아 있는 말씀이라 천체 만물을 창조하고, 허공이 권위의 절대존재라 천체만물을 지양한다.


하느님의 마음인 허공은 둘레가 없는 공이라 끝이 없다. 끝이 없는 허공을 생각하면 아찔하여 소스라치게 놀랄 뿐이다. 천심(天心)은 웅대하고 허공은 장엄하다. 웅대하고 장엄한 천심 허공에 일천억의 태양별을 지닌 은하우주가 일천억을 넘는다. 무려 1022개의 태양별이 펼쳐 있다는 것이다. 별을 없는 걸로 치면 무한 허공이 무극이고, 별을 있는 것으로 치면 무한 허공이 태극이다. 또 우리 맘속에 한없는 얼을 주시니 영극(靈極)이다. 성령의 영극, 허공의 무극, 천체의 태극이 다 합하여 하느님이다. 있는 모두 그대로가 하느님이다. 이를 스피노자와 노자는 ‘자연’이라고 하였다. 이 자연은 성령, 허공, 천체로 이루어진 있는 그대로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하나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뿐이라 절대다. 무극이 태극이요 태극은 하나다. 태극은 엄연히 하나(절대)요 영원히 하나다. 하나가 쪼개지거나 벌어졌다면 그것은 하나(절대)가 아니다.”


하나는 전체라는 뜻과 절대라는 뜻이다. 전체와 절대는 유일존재로 하느님밖에 다른 존재는 없다. 이 존재는 없이 있는 허공이다. 절대 허공이 전체이고 절대 허공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생멸의 물체를 개체라 한다. 


2) 한늘(하늘)님 : 무한공간과 무한시간을 포함하는 절대존재


▲ 르네 마그리트 < La Lunette D`Approche >


한늘님은 무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생성 소멸 변화되는 모든 것을 포함한 절대존재로서의 하느님이다. ‘한’은 무한 공간을 의미하며 ‘늘’은 무한 시간을 의미하니 그 둘이 합쳐진 ‘한늘’ 또는 그 변형태인 ‘하늘’은 무한 공간과 무한 시간을 포함하는 절대존재로서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시간적 공간적 사건들을 포함한 절대존재를 지칭한다.


위에서는 강조점이 ‘있음의 유래로서의 없음’에 놓여 있었다면 여기서는 그 ‘절대공의 없음’을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존재사건을 통틀어 가리키고 있다. 무한 공간과 무한 시간 안에서 벌어졌고 벌어지며 벌어질 그 모든 있음들을 간직하고 있는 절대존재로서의 하느님이 간직하고 있는 상대존재로서의 무한한 개체들을 그 상호관계에서 고찰하는 것이 여기에서의 시각이다. 없음의 무한 허공에 있음의 지평(돔)들이 끊임없이 세워지고 넓어지고 사라져 없어지며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을 잇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한한 공간과 시간 속에 놓여 있는 한 점 끄트머리일 뿐이다. 그것은 다시 자신의 유래인 절대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해 무극인 텅빔이 그릇으로서의 바탕, 마당이라면, 그러한 무한 공간과 무한 시간 안에서 전개되는 생성 소멸 변화의 모든 존재사건들은 그 무한한 그릇을 잠시 채우다가 사라져 가는 내용물들이다. 하늘님은 텅빔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주재하므로 거룩하다.


하느님은 실체인 무(無)와 양태인 유(有)로 되어 있다. 하느님은 무와 유, 바꾸어 말하면 공(空)과 색(色)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유는 자꾸만 바뀐다. 무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체인 하느님으로는 바뀌면서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한다.


“대우주 전체는 언제나 자기가 아니면서 자기다. 자기가 아니라는 것은 계속 변해 간다는 말이다. 계속 변하여 자기가 없어지지만 대우주는 여전히 대우주라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 무와 변하는 유의 양면을 가졌기에 전체로는 변하면서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서 변한다.”


구경각을 이루었음을 드러내는 가장 간단한 말은 무타(無他)다. 하느님밖에는 다른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절대존재인 것이다.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유일한 존재인 하느님 안에 부속물로 있을 뿐이다. 시간도 공간도 모두가 하느님의 내용물이다. 하느님을 떠난 시간이 어디 있으며 하느님을 떠난 공간이 어디 있는가. 다석은 변하지 않는 절대의 무와 변하는 상대의 유를 합친 것이 하느님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은 하느님 한 분뿐이다. 다른 모든 것은 하느님의 부속이고 내용이기 때문이다.


“허공인 하늘과 물질인 땅(相對)을 합한 것이 하느님이다. 절대의 무와 상대의 유를 합한 것이 하느님이다. 절대를 무극이라, 상대를 태극이라 한다. 태극․무극은 하나라 하나가 하느님이다.”


무(無)는 변하지 않는데 유(有)는 변한다. 우리는 지금 변하는 유가 되어 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무를 그리워한다. 무가 유의 밑동이기 때문이다. 다석은 말하였다. 


“자꾸 바뀌고(變易), 자꾸 사귀고(交易), 그 가운데 바뀌지 않는 불역(不易)의 생명을 가져야 한다. 바뀌는 것은 상대생명이요 바뀌지 않는 것은 절대생명이다. 바뀌는 것은 겉나요 바뀌지 않는 것은 속나이다. 절대세계는 상대세계를 내포하기 때문에 바뀌면서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변화하는 겉나(몸)에서 변화하지 않는 속나(얼)로 솟나면 무상(無常)한 세상을 한결같이 여상(如常)하게 살 수 있다.”


태극과 무극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한 가지로 하느님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태극이라, 무극이라 다른 말을 쓰게 된 것은 까닭이 있다. 어느 쪽의 자리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상대에서 절대를 보면 절대에 안긴 상대(만물)가 다 보여 태극이고 절대에서 상대(만물)을 보면 상대는 없고 절대(하느님)뿐이다.


상대적 존재란 있어도 없는 것이지만 전체인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사명)이 있어 존재의 값어치를 얻게 된다. 우리는 나 자신이 상대적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대적 존재는 낱 수가 많은 작은 것들로서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절대적 존재는 모든 개체를 포괄하는 전체로서, 유일 절대의 존재로서 없이 있어 비롯도 마침도 없다. 한마디로 상대적 존재인 개체는 유시유종이고 절대적 존재인 전체는 무시무종이다. 그러나 개체인 우리는 전체인 하느님을 잃어버렸다. 개체가 할 일은 전체로 돌아가 전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개체의 참 생명은 전체이기 때문이다. 전체를 회복하고 전체로 복귀하는 것이 영원한 삶에 드는 것이요, 참된 삶을 이루는 것이다.(16) 다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서 지나간 무지를 바로 알아 잊어버린 전체를 찾아야 한다. 하나(절대)를 찾아야 한다. 하나는 온전하다. 모든 것이 이 하나(절대)를 얻자는 것이다. 하나는 내 속에 있다. 그러니 마침내 하느님 아버지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17)



▶ 다음 편에서는 ‘없음의 의미구조’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지난 편 보기



 류영모, 명상록. 진리와 참 나, 박영호 풀이, 두레, 2000, 334.


 다석은 물론 여기에서의 구별처럼 하느님의 다양한 이름들을 구별해서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석이 이야기하는 ‘하느님’이 그와 같은 다양한 차원들을 포괄함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에서 우리는 박영호의 해설을 따라 ‘하느님’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하여 사용한다. 그렇지만 개개의 항목에서 강조하는 의미를 새기면서 읽는다면 다석의 의도를 놓치지 않으리라 믿는다.


 같은 책, 20.


 같은 책, 152.


 같은 책, 199.


참조 같은 책, 199.


같은 책, 239.


참조 같은 책, 239/40.


참조 같은 책, 246/7.


같은 책, 330.


같은 책, 45.


참조 같은 책, 134.


같은 책, 136.


같은 책, 136/7.


참조 같은 책, 200.


(16) 참조 같은 책, 308.


(17) 같은 책,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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