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양심이 살아나고 영혼이 깨어나는 것이 성탄입니다”
  • 이기우
  • 등록 2019-12-24 16:12:17
  • 수정 2019-12-24 17:17:45

기사수정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19.12.25) : 이사 9,1-6; 티토 2,11-14; 루카 2,1-14



태초에 우주를 창조하시고 이 안에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별로 지구를 조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지구 생태계 안에서 자율적으로 진행된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기다리셨다가 정신과 의식을 갖춘 진화과정의 정점에 인간을 출현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으로 하느님을 닮았어야 할 첫 사람들이 교만에 빠져 원죄를 지은 이후 그 후예들은 하느님 없이 제멋대로 살고자 하였고 그래서 홍수의 심판을 겪고 나서도 여전히 세상의 죄는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인지가 발달하여 문명을 이룰 무렵, 우상숭배 풍습에 물든 수메르 문명에서 아브람을 고르시어 당신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대로 지목하셨습니다. 이후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이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가서 하느님과 대화하며 하느님의 집안을 일구었습니다. 그는 말벗이 필요하셨던 하느님의 대화상대가 되어 의사소통을 한 첫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닷가의 모래알이나 밤하늘의 별처럼 후손이 많아지리라는 축복을 받았지만 막상 그 자신은 늘그막까지 자식이 없다가 백 살이 되어서야 아흔 살 된 아내 사라로부터 외아들 이사악을 얻었습니다. 그 이사악은 에사우와 야곱이라는 쌍둥이 형제를 낳았는데, 이 야곱에게서 열두 아들과 한 딸이 태어났습니다. 이로써 삼대만에 아브라함의 집안이 비로소 가문의 꼴을 갖추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우여곡절 끝에 기근이 잦은 가나안 땅을 벗어나 풍요로웠던 이집트 땅으로 들어가서 수백 년 만에 육십만을 넘는 인구로 불어났습니다. 이 무렵 이집트 파라오는 히브리로 불리던 야곱의 후손들을 노예로 삼아 마구 부렸는데, 히브리들의 원성과 울부짖음을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모세를 인도자로 삼아 이집트를 탈출시키시어 사십 년 걸려서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해방시키셨습니다. 


지구상에 최초로 하느님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민족 집단이 공동체를 이루고 나라를 세우며 종교적 형식까지 갖출 때까지 하느님께서 기다려주셨습니다. 그 동안에 동서양에 흩어진 인류도 언어와 문자를 기반으로 학문이 생겨나서 세상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기 시작했고, 과학기술의 초보적 형태라 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 농업혁명이 일어나서 세상을 개척하기 시작했으며, 문화예술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역사와 문명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말씀을 건네시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마침내 때가 차서 하느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전의 역사에서도 하느님을 닮아야 할 인간으로 사람들이 살아야했지만 세상의 죄가 넘쳐나자 하느님께서 직접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진화의 정점에 이르러 출현한 인간 존재의 정신과 의식을 다시 한 번 그 실체가 영혼으로 도약하도록 하느님을 닮은 존재가 되어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 가문의 후손인 요셉의 보호 아래에서, 신심 깊은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 직접 간택하신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자렛 사람으로 오신 그분이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전에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을 통해서는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셨던 그분은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해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이로써 어둠 속을 걷던 인류가 큰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암흑의 땅에 살던 인류에게 빛이 비추이게 되었습니다. 창조의 신비가 진화되어 가다가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 도약한 단계가 강생의 신비입니다. 양심으로 하느님과 의사소통하고 영혼으로 하느님을 닮을 수 있는 인간 존재가 출현한 역사적 기원입니다. 


그런데 유다교라는 종교 형식으로 하느님을 섬겨오던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당신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내려오시어 그들이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 형식을 갖추게 되었고 교회라고 불리는 새 인류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옛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새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들을 모태로 삼고 쇄신한 참 이스라엘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교회는 동서양에서 인류가 이룩해온 문명과 만나면서 세상의 지식을 배웠고 세상을 개척했으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배웠습니다. 아직까지 인류 문명은 인간을 문명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어서 하느님과 원활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하느님과도 그렇고 또 인류 문명과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강생하신 그리스도의 성사이며 또한 인류에게 말을 건네시는 하느님의 성사입니다. 인류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인류에 앞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존재이며 또한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교회도 세상에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강생해야 하며 이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합니다. 예언자들은 물론이요 예수님을 이끌어주신 성령께서 교회의 이러한 강생 노력과 대화 시도에도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을 맞이하여 세상에 교회가 기쁜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서 교회가 듣고 있는 기쁜 소식입니다. 교회의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세상에 보여주고 가져다주어야 할 교회의 성사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영혼과 양심으로 세상에 나아갈 수 있는 큰 빛이 세례의 은총으로 주어진 존재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느님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영혼과 양심으로 주어진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그저 또 다른 아담과 하와가 아니라 또 다른 아브라함입니다. 이런 존재야말로 교회의 성사입니다. 


그래서 구세주의 성탄으로 말미암아 큰 빛을 보게 된 사람들은 어둠 속을 걷던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며, 그 빛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세상에 빛을 비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분 없는 상태에서는 암흑의 땅에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암흑 상태에서는 인간다운 언어를 말하고 인간다운 처신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맞이하는 이 성탄은 일찍이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수확할 때 농부들이 기뻐하듯이, 군사들이 전리품을 나눌 때 기뻐하듯이” 기쁠 것입니다. 하느님을 닮을 수 있고, 예수님을 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무디어져서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던 세상 사람들에 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성탄을 맞이하는 자세가 다른 것은 이 기쁨 덕분이라는 것이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오시는 메시아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시라고 믿습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가르쳐서,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준다고 믿어 고백합니다. 그분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모든 불의에서 해방시켜주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으니, 이 또한 믿음으로 기쁘게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창조 이래 이 세상의 모든 아담과 하와와는 질적으로 다른 고귀한 삶을 시작하실 메시아와 함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새롭게 창조된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 데 대해서 춤출 듯한 기쁨으로 감사할 것입니다. 영혼이 잠들어있어 하느님을 닮지 못하던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성탄을 맞이하는 자세가 달라야 하는 것은 이 감사의 마음이라는 것이 바오로의 사도적 고백입니다. 


이천 년 전, 메시아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실 때에는 그분이 오실 자리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만삭이 된 몸으로 도착한 다윗의 고향이자 요셉의 본관인 베들레헴에서 마을 사람들이 방을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짐승들이 머무는 차디찬 동굴로 가서 그 짐승들의 먹이가 담기는 구유통에서 그분은 태어나셨습니다. 조상들의 고향 땅에서 사람들의 축복어린 시선과 돌봄 속에서 태어나셔야 했으나 그러기는커녕 차갑고 냉정하게 내쳐지신 그분을 가난한 시골 목동들이 따뜻하게 맞이해 드렸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알아뵙도록 알려준 존재가 천사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전례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께서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를 알아보고 맞이하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난 대림 시기 한 달 동안 주일 전례를 통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메시지를 상기해 봅니다. 우선은 우리 마음속에 구유를 준비해서 구세주께서 오실 내심낙원으로 꾸미라는 것이었습니다. 내심낙원에 비추이는 빛을 통하여 세상의 어둠을 직시하라는 것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느님 사랑의 빛과 사랑이 필요한 주변 이웃에게로 그 빛과 사랑을 비추고 나누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설사 그 과정에 고뇌와 갈등이 수반된다 하더라도 요셉처럼 믿음의 힘으로 버티어내는 영성이 필요합니다. 


이 대림의 과정을 우리보다 먼저 겪은 사람이 사도 바오로입니다. 사도행전이 증언하는 바, 바오로가 사도로 부르심을 받기 전에 겪은 성탄 체험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겪었던 체험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번개로 보이고 천둥소리로만 들렸겠지만, 그에게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 순간 사울의 양심이 살아났고 영혼이 깨어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율법주의자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선교사요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소리로만 듣는다든가, 시대의 징표를 보면서도 다사다난한 세상사로만 보고 있으면 우리는 아직 강생 이전의 시대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의 전례에서 선포되는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일상의 현실에서 보여주시는 시대의 징표 속에서 그분의 메시지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분께 살아있는 응답을 드릴 수 있을 만한 대화상대로 거듭 태어나는 것, 그리고 그분과의 관계가 살아있도록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 이것이 교회의 성탄입니다. 본래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심어주신 양심이 살아나고, 예수님께서 세례로 재생시켜주신 영혼이 깨어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성탄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