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교황청 사도궁 입구에 구명조끼를 입은 십자가상이 놓였다. 이 십자가상은 기근과 전쟁 같은 어려움에서 탈출한 난민들을 상징하는 구명조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십자가를 통해 난민에 대한 관심을 강력히 촉구했다.
교황은 이날 구명조끼 십자가상 전시 기념식에서 난민들을 만났다. 이들은 최근 교황의 요청에 따라 교황청 자선소(자선사제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와 가톨릭국제공동체 산테지디오(Sant’Egidio) 의 도움으로 이탈리아에 온 33명의 난민들이다. 교황은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마주했다.
이 조끼는 며칠 전 해상 구조대원에게서 받은 조끼로, 지난 7월 바다에서 실종된 한 난민의 것이었다.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교황은 이같이 말하며 “난민들이 자기 땅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불의다. 이들이 사막을 횡단하고 수용소에서 학대와 고문을 당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도 불의이며 이들을 거부하고 바다에서 죽게 만드는 것 역시 불의”라고 규탄했다.
교황은 “이 십자가가 ‘입고’ 있는 조끼는 색이 들어간 합성수지로 만들어졌으며 내가 해상 구조대원들의 말에서 얻을 수 있었던 영적 체험을 표현하고 있다”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는 구원의 원천으로 성 바오로가 말하듯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1고린 1, 18)이다”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십자가가 투명한 소재로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며 “이는 더욱 유심히 살펴보고 언제나 진실을 찾으라는 도전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예수의 십자가는 빛을 내며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신 일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해준다”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은 채 죽은, 누군지 알 수 없는 난민 역시도 이러한 승리를 함께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 이 구명조끼를, 이 십자가에 ‘못 박힌’ 구명조끼를 전시하기로 한 것은 우리가 언제나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과 모든 인간 생명을 구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도들에게 당한 사람을 외면한 사제와 레위인의 이야기(루카 10, 31-32)를 들어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의 사제와 레위인처럼 어떻게 우리는 ‘반대쪽으로 지나갈’수 있는가? 우리의 태만이 바로 죄인 것이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교황은 특히 내국민들이 난민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식의 근거가 부족한 경제적 이유를 들어 난민을 거부하는 국가들에 대해 “경제적인 이해관계는 옆으로 제쳐두고, 하느님이 보시기에 소중한 생명과 존엄을 지닌 인간이 중심에 있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난민을 돕고 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웃의 생명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며 “주님께서는 심판의 날에 우리에게 이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구명조끼 십자가상 아래에는 ‘지중해 7월 3일, 북위 34도 16분 518초 동경 13도 42분 289초, 표류 중 회수’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