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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요 스승’인 교회를 살고 있는 가
  • 이기우
  • 등록 2020-01-07 14: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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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2020.01.07) : 1요한 4,7-10; 마르 6,34-44


1958년에 교황직에 선출된 요한 23세는 매우 답답했습니다. 세상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데도 교회는 그 위험신호를 도무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에서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하던 세상 사람들은 종교를 멀리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역설적으로 표명하고 있었는데도 교회는 고답적인 자세로 그들을 냉담자요 무신론자라고 단죄하기 바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 23세는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주교와 신부, 수도자와 평신도의 마음을 세상을 향해 열고 싶어서 공의회를 소집했습니다. 


교황청 관료들은 투덜거리면서 공의회를 준비했고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제대로 마감하지 못했던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미결과제들을 중심으로 매우 보수적인 초안을 관례대로 마련해 놓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5천여 명의 주교들을 맞이했습니다. 이때 이미 전임 교황 비오 11세가 유럽 선교사들에 의해 개척된 제3세계 교회에도 주교들을 다수 임명해 놓은 바 있었기 때문에 공의회는 모처럼 ‘세계적인’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1962년에 소집된 공의회 제1회기 동안에 초안을 검토해 보고는 모조리 퇴짜를 놓았는데, 요한 23세는 오히려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머쓱해진 것은 교황청 관료들이었지만 특히 제3세계에서 온 주교들은 처음 참석한 공의회에서 완고한 초안에 실망하면서도 그 거부의 뜻을 수용한 요한 23세 덕분에 뜻밖에 고무되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었습니다. 


▲ 교황 요한 23세 (사진출처=Catholic World Report)


그 후 4년 동안 더 지속된 이 공의회에서는 주교들이 자기 교구 신자들로부터 신앙의 상황에 대해 듣기 시작하고, 그 들은 바를 가지고 서로 통교하기 시작하면서 현대 가톨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전례는 하느님 백성을 성령의 기운으로 채우고 있는지, 교회의 교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게 해설하고 있는지, 교회의 조직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지, 갈라진 교파나 이웃 종교들과는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심지어 무신론자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등등을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본시 하느님으로 채워져야 할 인간에게 하느님 아닌 그 어떤 것이 주어진다 해도 충분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그동안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려 안간힘을 써 왔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점점 더 하느님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런 무신론 세상을 교회는 고고하게 내려다보며 단죄하기 바빴었는데, 공의회를 이끄신 성령께서 교회로 하여금 하느님이나 세상이 아니라 교회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셨습니다. 


교회가 과연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고 있는지, 교회의 교회다움을 반성하고 성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질식사할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격이었습니다. 인간은 사랑 없는 세상에서 단 한 시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폭력이 일상적으로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평화로이 살 수 있습니까?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죄스런 행위로 규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 편히 삽니까? 미움과 질투, 분노와 저항 아니고서도 우리는 서로를 인간답게 대하면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2천 년 역사, 동방교회와의 관계, 개신교 신자들과의 관계, 이웃 종교와의 관계, 무신론자들에 대한 태도를 원점에서부터 점검했습니다. 


바로 그 직전 공의회에서까지 공의회와 교황이 서로 수위권을 놓고 다투던 논쟁을 거두었습니다. 주교단은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공동 후계자임을 확인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른바 「공현 공백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는 현대 인류의 상황에 대해 어렵게 발언하게 된 것도 성령께서 용기를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교회가 여러 민족들의 문화로부터 배운 바가 컸음을 인정하게 된 것도, 인문적 소양이 부족했던 탓으로 선구적인 성직수도자들, 지식인들과 과학자들의 충고와 비판을 귀담아 듣지 못하고 함부로 단죄하고 재판했던 과오를 솔직히 시인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모처럼 현대 가톨릭교회를 주님께로 이끌게 된 공현의 빛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 같았던 군중에게 하느님 나라의 진리와 지혜를 가르쳐주시고, 그러다가 군중이 허기졌음을 아시자 빵의 기적을 일으켜서 5천명도 훨씬 넘는 그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요한 23세는 교회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황직에 오른 직후인 1961년에 반포한 첫 회칙의 첫 머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어머니요 스승인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만민의 어머니요 스승인 가톨릭교회를 세우시어, 모든 시대에 그 사랑의 품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더 더욱 훌륭하고 풍요로운 삶과 더불어 구원을 얻게 하셨다.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인 이 교회에, 그 지극히 거룩하신 창설자께서는 두 가지 사명을 맡기셨다. 즉, 스스로 자녀들을 낳고, 그 낳은 자녀들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것이다. 교회는 어머니다운 배려로써 개개인과 민족들의 삶을 이끌어왔으며, (스승다운 배려로써는) 그 드높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언제나 최대한 존중하여 왔고 이를 철저하게 수호하여 왔다.” 


그래서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베풀고 가르쳐주어야 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일깨워주는 이 회칙의 제목이 ‘어머니요 스승’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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