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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일치를 위한 깃발
  • 이기우
  • 등록 2020-01-16 12: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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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목요일 (2020.01.16.) : 1사무 4,1ㄴ-11; 마르 1,40-45



사무엘 예언자가 전해주는 이스라엘 역사의 한 단면에서는, 바야흐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필리스티아인들과 대적해야 하는 처지에서 패배를 거듭하다가 계약의 궤를 모셔 오자 사기가 높아져 승리할 수 있었다는 고사(古事)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때 이후 필리스티아인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고두고 대결해야 하는 숙명적인 상대가 됩니다. 로마제국이 이 땅을 점령하면서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기를 꺾어버리기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대신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도록 강제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처지가 뒤바뀌어서 미국의 강력한 후원을 받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원주민을 압박하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두 민족은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과 이사악을 낳았는데,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함족으로서 그 일파가 필리스티아인들이기 때문이고 이사악의 후손들이 셈족으로서 이스라엘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혈연의 뿌리는 서로 대결했던 고사와 역사적 숙명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대결적인 처지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더 결정적인 운명을 보여줍니다. 


때문에 오늘 독서에 나온 한 단편적 고사에서는 계약의 궤가 주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영적 힘의 근원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사기를 북돋우고 단결하여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대항하는, 그래서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화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유다인의 일원으로 세상에 오신 하느님께서는 필리스티아인들의 후손으로서 그 땅에 살고 있던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 환자는 예수님께 향한 믿음으로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알려져 있던 그 끔찍한 질병에서 깨끗하게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한꺼번에 치유되기도 했던 다른 고사에서는 유다인 나병 환자들이 치유를 받고도 그 치유가 예수님의 기적인 줄도 몰랐던 것과 달리 사마리아인 나병 환자 한 사람만 다시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하느님의 현존은 인간으로 하여금 기운을 북돋울 수 있기도 하고 질병을 치유하는 등 서로 일치하고 희망을 발견하게 해 주는 근거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약의 궤가 편협한 선민의식의 발로로서 이스라엘 군대의 깃발이었던 것과는 달리, 성체성사는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모두의 일치를 위한 우리의 깃발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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