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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논쟁으로 드러나야 할 동서 교회의 새 지평
  • 이기우
  • 등록 2020-01-21 16:22:31
  • 수정 2020-01-21 18: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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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네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2020.1.21.) : 1사무 16,1-13; 마르 2,23-28


오늘 미사의 독서인 사무엘 상권 16장에 따르면, 사울에게 주어졌던 이스라엘의 왕권은 그가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데 실패함에 따라서 사무엘 예언자가 새로 발굴한 인물인 다윗에게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사울의 왕권은 한동안 지속되었고 그에 따라 미래의 권력으로 지명된 다윗은 안정된 왕권을 확립하기까지 현재의 권력이었던 사울의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미사의 복음인 마르코 2장에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 사이에서 안식일 규정과 관련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십계명의 세 번째인 이 안식일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 하는 논쟁은 기존의 유다교 체제에서 장차 일어날 그리스도교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데 실패하여 왕권 갈등이 생겨났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 실패하여 종교적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갈등의 결과로 다윗은 안정된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안식일 논쟁으로 말미암아 십계명을 능가하는 사랑의 계명이 그리스도교의 상위 가치질서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실제로 세상에 드러나는 과정은 사람들이 알아듣고 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갈등과 논쟁이 필수적입니다. 


저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다르고, 처해 있는 입장도 다르며, 다른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정도와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로부터 시작된 교회도 초대교회 시절부터도 단일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로부터 고대로 넘어가던 시기에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인 이들이 많이 모여 있던 공동체들은 모두 다섯이었는데, 애초에 복음이 시작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공동체가 있었고, 스테파노로 인한 박해 이후 북쪽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시작된 안티오키아 공동체가 있었으며, 남쪽으로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도 커다란 신앙 공동체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콘스탄티노플에는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고, 사도 바오로와 베드로가 직접 가서 선교한 로마에는 유다인, 그리스인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모여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큰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문화적 수용양식에 의해서도 교회의 양상은 매우 다양했으니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례입니다.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유다계 공동체가 발전시킨 유대식 예루살렘 전례가 있었고, 안티오키아에 모여 있던 시리아계 공동체가 발전시킨 시리아 전례나 알렉산드리아에 모여 있던 그리스계 공동체가 발전시킨 곱틱 전례가 있었는가 하면, 그리스 문화에 바탕을 두면서도 로마적 경향이 강해지던 콘스탄티노플에 모여 있던 그리스-로마계 공동체가 발전시킨 비잔틴 전례가 또 있었습니다. 물론 로마화 경향에 있어서 가장 앞서 가던 로마 공동체가 발전시킨 로마 전례가 또 있었습니다. 


내적으로는 신앙으로 하나인 교회 안에서도 그 단일한 신앙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관습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닌 겁니다. 


전례는 신앙의 표현이므로 공동체 간에 우열을 따질 수 없듯이 전례 형식도 다양한 채로 존중되어왔지만, 공동체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은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매우 역동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녀 아네스도 3세기 후반과 4세기 초반에 치명을 해야 했을 정도로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교가 신앙의 자유를 공인받고 로마 제국의 국교로까지 인정받으면서 교세를 넓혀가던 상황에서 로마 제국이 정치적으로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다섯 군데의 큰 공동체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던 그리스도 교회에도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사진출처=erzdioezese wien)


끝내 동서방 교회의 분열로 이어진 이 사태를 두고, 서방 교회는 동방 교회가 이탈한 것으로 보는가 하면, 동방 교회는 서방 교회가 이탈한 것으로 봅니다. 지금까지도 이러한 입장은 변함없이 고수되고 있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동방 교회에 관한 교령을 반포하면서도 분열의 원인 논쟁에 대해 상호간에 벌어진 채로 무려 천년 이상을 내려온 역사적 이견을 그대로 수용하고 접어두었습니다. 


로마 공동체가 관할하던 서로마제국의 영토는 광대했고, 또 베드로 이래 로마 공동체는 나머지 공동체들에 대해 관대하고 자비로운 애덕의 실천을 주저하지 않아 왔었기에 베드로의 사도적 권위에 애덕 실천에 따른 도덕적 우위가 따라왔던 것뿐입니다. 하지만 다섯 공동체 사이의 관계는 우열의 관계가 아니었고 단지 관습과 정치적 상황이 다를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마호멧과 이슬람 세력이 출현하여 압박을 받고 있던 동로마제국 지역의 네 공동체들과, 프랑크 왕국이 유럽을 통일한 후 멸망한 로마제국을 승계하여 로마 공동체를 지지하게 되면서 생겨난 정치적 무게중심이 기울어진 사정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수위권을 법적으로까지 주장해 온 로마 공동체의 위세가 강화된 정치적 발언권을 등에 업고 언어와 문화, 관습의 차이 등을 빌미로 상호 파문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 동서방 교회 분열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하지만 신앙과 교리에 대한 공통분모가 워낙 크고 든든하기 때문에 천년 만에 어렵사리 회복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섬김의 자세를 잃지만 않는다면, 동방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발전시킨 전례 및 수도생활의 영성과 서방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발전시킨 조직과 선교적 성과를 두고 서로 통공함으로써 동·서방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양성 안에서 하나 된 교회의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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