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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의식해야 할 것은 후대의 심판이다 - [이신부의 세·빛] 성경의 인사청문회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2-07 17:35:46
  • 수정 2020-02-07 17: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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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금요일(2020.2.7.) : 집회 47,2-11; 마르 6,14-29


오늘 독서인 집회서 47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역대 임금들 중에서 다윗을 소환하여 평가하고 있고, 오늘 복음인 마르코 6장에서는 예수님께 관한 소문을 듣게 된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참수하게 된 경위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분의 소문을 들으면서 요한을 떠올린 사람들은 예언자로서의 면모와 더불어 하느님의 사람으로서의 신적인 능력까지를 연상했습니다. 특히 요한을 의로운 사람으로 여겨 두려워했으면서도 생일잔치에서 술기운에 겨워 호기롭게 장담했다가 헤로디아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한을 참수하게 되었던 헤로데는 예수님을 부활한 요한으로 여길 정도로 두 사람을 동일시했습니다. 


다윗과 요한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연상시키는 이 같은 성경의 기록은 이를 읽고 듣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네 삶 역시 언젠가는 역사의 심판대는 물론 하느님의 법정에 오를 것임을 상기하게 해 줍니다. 생전의 다윗과 요한이 이런 후대의 심판을 의식하고 있었을까요?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생전에 후대의 심판을 의식하며 생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 삶이 하느님 앞에서는 훨씬 더 지혜로울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훨씬 더 너그럽고 자신한테는 훨씬 더 절제될 수 있을 것이며, 세상 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용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윗에 관한 열왕기의 기록에 비해 집회서의 기록이 훨씬 더 관대한 것은 우리네 삶도 그처럼 자비로운 심판을 받기를 기대하는 우리네 희망을 충족시키는 바가 있습니다. 집회서는 어린 시절부터 말년의 다윗까지 온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면서 공로에 대해서는 길게 좋은 말로 평하고 있지만 그가 저질렀던 죄악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늘어놓지도 않고 그 죄악을 용서해 주셨다는 짤막한 언급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라고 외쳤던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던 예언자였는데,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추상같이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예수님께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헤로데나 바리사이 같은 이들도 회개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지만 적어도 저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가 보여준 겸손한 정의의 삶이 헤로데로 하여금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도 요한을 연상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평판에 신경을 씁니다만 정작 의식해야 할 것은 후대의 심판일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역사를 거울이라 하였습니다.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추어 보면서 정갈하게 씻듯이, 후대의 역사가 우리네 삶을 심판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지금부터 옷매무새를 다듬듯이 삶의 매무새도 다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선비였던 율곡 이이 선생이 자신의 삶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려고 스무살 나이에 지었다는 자경문(自警文)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1. 뜻을 크게 갖고서 성인의 삶을 따른다. 

2. 마음이 안정된 사람은 말이 적으니, 말을 적게 한다. 

3. 마음이란 살아 있는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정신을 한데 모으고 담담하게 그 어지러움을 살핀다. 그렇게 마음공부를 계속 하다보면 마음이 고요하게 안정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4. 홀로 있을 때 헛된 마음을 품지 않는다. 모든 악은 홀로 있을 때 삼가지 않음에서 비롯되니, 마음속에서 올바르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5. 앉아서 글만 읽는 것은 쓸데없다. 독서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일이 없으면 그만이겠지만, 일이 있을 땐 옳고 그름을 분간해서 합당하게 처리한 뒤 글을 읽는다. 

6.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는다. 일을 할 때 대충 편하게 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7. 해야 할 일은 정성을 다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은 마음속에서부터 끊는다. 

8. 불의한 일을 단 한 번이라도 해서, 또 무고한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9. 누가 나에게 악을 행하면 나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돌아본 뒤 그를 감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10. 가족들이 착하고 아름답게 변화되지 않는 것은 내 성의가 부족하여 그런 것이니 나 자신을 돌아본다. 

11. 몸에 질병이 있거나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아니면 눕지 않는다. 비스듬히 기대지도 않는다. 

12. 공부는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서두르지도 늦추지도 않는다.


매일의 미사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리 삶을 하느님의 거울에 비추어보는 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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