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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해지는 지향으로 살아가자는 뜻
  • 이기우
  • 등록 2020-02-11 17:54:12
  • 수정 2020-02-11 17: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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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간 화요일 (2020.2.11.) : 1열왕 8,22-23.27-30; 마르 7,1-13


▲ 루르드 마사비엘 동굴 전경


오늘은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이 지향은 1858년 2월 11일부터 프랑스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에 성모 마리아께서 수비루 베르나데트에게 십여 차례 나타나셔서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임을 밝히시고 이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라고 당부하셨으며, 이것이 진실된 메시지임을 믿게 하기 위해서 동굴 앞에 갑자기 샘이 터져 나오게 하시고 그 샘에서 솟아나오는 물로 씻은 많은 불치병자들이 낫게 되는 기적을 보여주신 데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15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숱한 불치병자들이 이 샘물에 몸을 씻고 치유되는 기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치유를 간절히 염원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고, 그래서 이 루르드 성지를 찾는 건강한 이들도 병든 가족이나 지인들을 위한 마음에서 기적의 샘물을 챙기는 세태를 탓할 수만은 없지만, 루르드 성지를 순례하거나 이 샘물에 몸을 씻거나 이 샘물을 마신다고 해서 모든 병이 낫는 것은 아니고 보면, 무언가 성모님의 뜻을 오해하고 있는 구석이 있다는 미심쩍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선언을 믿을 교리로 반포한 때는 이보다 4년 전인 1854년이었고, 이렇게 되기까지 천팔백 년 이상이나 되는 오랜 역사적 진통이 신학자들과 교황청에게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부터 마리아 신심이 뜨거웠던 신자들 사이에서는 구세주를 잉태케 하신 하느님이시라면 그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실 분에게도 그 품위에 맞갖은 준비를 하셨으리라는 믿음이 전해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이를 인정하는 데 주저했습니다. 오죽하면 중세의 뛰어난 대신학자로 알려진 토마스 아퀴나스마저도, 마리아에게 원죄의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피조물인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일 수밖에 없는 원죄 교리가 흔들린다면서 반대를 했겠습니까? 


그렇게 천팔백 년이 흘러오다가 마침내 비오 9세는 당시 교황청 관료들은 물론 자문 신학자들과의 신중한 논의를 거친 끝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을 반포함으로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라고 선언하였으며, 가톨릭 신자들은 이를 믿을 교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천명하였습니다. 이 교리를 무염시태(無染始胎)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통신사정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와 인접한 프랑스에서조차도 그 믿을 교리는 알려지지 못하고 있었으며, 설사 알려졌다 해도 순순히 받여들여지기 어려울 정도의 불신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자유, 평등, 연대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대혁명 이후 이 혁명을 반대했던 가톨릭교회에 대한 반감으로 인간 이성을 신앙보다 중시하고 있었던 탓입니다. 프랑스에서도 남부의 오지였던 루르드에, 그것도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함은 물론 교리도 잘 이해하지 못하던 시골 소녀 수비루 베르나데트에게 성모 마리아께서 나타나셔야 했던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그리고 베르나데트가 전하는 이 무염시태 교리를 믿을 수 있도록 게르마늄 성분이 풍부한 샘물로 기적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병의 치유를 소망하고 또 이 메시지에 따라서 원죄는 물론 세상의 죄를 벗어나겠다는 지향을 지니고 있을 때 비로소 기적적 치유도 가능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병자들의 치유를 기원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 신심에 따라 세상의 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해지려는 지향으로 살아가자는 뜻이 오늘을 세계 병자의 날로 정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의향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솔로몬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고 계약의 궤를 모실 수 있는 성전을 다 짓고 나서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부디 하느님께서 이 성전에 현존하시기를 청하는 염원을 담아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첫 성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이 노력과 기도에는 진정성이 부족했습니다. 성전과 함께 지은 자신의 궁전은 성전보다 일곱 배나 더 크게 지었고,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해 응답을 바라면서도 우상숭배의 풍습을 멈추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솔로몬의 다음 대에 가서 왕국은 정쟁에 휘말려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당시 바리사이 유다인들이 준수하던 정결례 관행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외출했다가 귀가하면 몸을 씻어야 하고 특히 손을 반드시 씻고 나서야 음식을 먹곤 하던 이 관행은 비단 위생적인 이유에서도 필요했지만, 이 관행이 정결례라는 종교 의식이라는 관행으로까지 굳어진 데는 이 일상적 행위에다 종교적 지향을 담아서 죄를 씻자는 뜻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바리사이들은 죄를 씻기는커녕 저지르고 있으면서 겉으로만 이 관행을 준수하고 있었고, 그래서 당신 제자들이 외출했다가 음식을 먹는데, 물이 귀한 그 고장에서 미처 손을 씻지 못하고 음식을 먹는 광경을 보고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비난하게 되니까 예수님께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시는 내용이 오늘 복음입니다. 


죄는 자기가 짓건 남이 우리에게 짓건,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통로를 가로막기 때문에 영혼을 상하게 해서 신체 면역력도 약화시킵니다. 병은 그래서 생기는 것이지요. 오늘, 세계 병자의 날을 맞이해서 치유되고자 원하는 이들이 이런 이치를 올바로 깨달아서 바르게 청원하고 제대로 노력했으면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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