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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 [이신부의 세·빛] “수난은 부활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2-17 14:59:30
  • 수정 2020-02-19 1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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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간 월요일 (2020.2.17.) : 야고 1,1-11; 마르 8,11-13 



구약시대에 지도자든 백성이든 믿음이 흔들려서 이스라엘이 시련을 겪게 되면 어김없이 예언자들이 출현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위로하고 격려하곤 했습니다. 예언자가 이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은 현실의 시련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상상함으로써 현재에 필요한 믿음과 인내를 지니도록 격려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께 대하여 바리사이들이 그분을 시험하고 논쟁하며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세태에 있어서도 그분은 맞상대를 하는 대신에 그들을 버려두신 채 피하는 처신을 하셨습니다. 이미 여러 가지 치유와 구마의 기적으로 표징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터에 그것은 인정하지 않고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바리사이들은 표징을 요구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예수님께 대한 극도의 불신과 증오를 표명하고 배척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예수님께 시련을 안겨줄 힘을 발휘하기는 하겠지만 길게 보면 힘을 지니지 못한 헛된 것이기 때문에 그분은 그로 인해 수난을 당하실 각오를 하실지언정 맞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그 수난은 부활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런 처신은 예언자들이 그저 상상력을 발휘해서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실제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라고 하겠고,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실체를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처신은 사도들에게서도 이어지지요. 


다행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믿음으로 고백하게 된 소수 이스라엘 백성이 로마와의 독립전쟁 이후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어도, 하느님은 물론 예수님도 알지 못하던 이방 민족들 사이에서 믿음의 시련을 받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본 바리사이들도 이를 하느님의 표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터에, 아예 예수님조차 본 적이 없던 이방인들이 그분을 그리스도로 믿는 이들을 이해하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는 삶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시련을 당하는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 사도가 예언자들을 본받아 사도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요지는,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 없는 기쁨으로 여기라”는 권고였습니다. 얼핏 듣기에 이 권고는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야고보 사도는 사도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권고를 편지에 써서 보내는 사도 야고보는 이미 믿음의 눈으로 그리스도 신앙이 가져올 미래를 앞당겨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미래에서 하느님께서 너그럽게 베풀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비천한 이는 이미 고귀해졌음을 알고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부유한 이는 이미 비천해졌음을 알고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순절을 앞두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마음가짐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십 일 동안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은 지금의 이 시련을 인내로이 견디어낼 수 있는 희망이요, 상상력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보여준 믿음의 상상력을 우리도 발휘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더 성숙하게 처신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무엇보다도 각자가 지닌 양심이 살아남으로 해서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룩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는 일입니다. 


곳곳에서 우리나라의 국운이 상승하는 희망적인 조짐들이 나타나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 일들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운 상승의 희망적인 조짐들은 이런 일들입니다. 현 정부가 천명한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에 따라 우리 기업들이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 등 남방 여러 나라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북방 여러 나라에서도 신뢰와 실적을 바탕으로 대규모 공사들을 수주하는 등 낭보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 기생충 >이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영화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미국 영화예술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오스카상을 4개 부분에서 받아 전 세계의 화제가 된 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산업계에 이은 이런 문화적 낭보는 기왕의 한류 세계화 흐름의 연장선 상에 있거니와, 스포츠계에서도 낭보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쇼트트랙 종목에서 우리나라 남녀 선수들이 국제빙상연맹이 주최하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모조리 차지하게 된 일도 그 선수들의 개인적인 성취만이 아니라 한국인의 저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답답한 일들은 나라 안팎에 여전합니다. 시대착오적 생떼를 쓰고 있는 야당에 발목잡혀 있는 국내 정치가 그러하고, 남북 정상 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몽니와 억지 때문에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남북 관계의 현실이 그러하며, 무례하고 옹졸한 일본 정부의 정책 때문에 혐한과 반일로 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한일 관계의 현실이 또한 그러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 광고주들에 발목이 잡혀서 도무지 여론을 읽지 못하고 있는 언론들의 까막눈 현상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누구나, 나는 세상의 절반입니다. 희망적이건 답답하건 세상 일들 못지않게 우리 자신의 마음과 주변 인간관계의 일들도 주관적으로는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 세상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부터, 그리고 마음부터 관계에 이르기까지 빛을 밝히고 믿음을 발휘해야 비로소 세상도 밝아지기 시작할 것이고 아름다운 미래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의 작은 세상부터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일은 그래서 미룰 수 없습니다. 그로 인한 시련과 수난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입니다. 우리 모두, 나는 세상의 절반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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