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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이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모범이 되어야
  • 이기우
  • 등록 2020-02-21 18:31:13
  • 수정 2020-02-21 18: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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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2020.02.22.) : 1베드 5,1-4; 마태 16,13-19


▲ Guido Reni < St. Peter Penitent >


오늘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자신있게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를 수제자로 삼으시고 천국의 열쇠를 맡겨주셨기에 오늘날 베드로의 후임자들이 로마의 주교요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예수님의 지상 대리자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사가들은 이렇듯 예수님의 신임을 받은 베드로의 또 다른 모습을 숨김없이 보도하였습니다. 스승으로부터 수난과 부활 예고를 들었을 때 스승을 만류하려 드는 모습이라든가, 스승이 체포되시고 재판을 받던 빌라도 관저 앞뜰에서 그분의 안위가 걱정되었는지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얼쩡거리며 군불을 쬐다가 수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추궁하자 그만 자신도 체포당할까봐 겁이 났는지 스승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모습이 그것입니다. 


이렇듯 충직하면서도 소심한 베드로에게 부활 후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충직함을 기억하시는 듯 세 번의 신앙고백을 다짐받으시고 재신임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배신을 저질렀어도 이스카리옷 유다보다는 낫고, 빌라도 관저에서 얼쩡거리던 심정으로 미루어볼 때 멀찌감치 도망쳐버렸던 나머지 제자들보다도 낫다고 생각하셨는지 이 때에도 몰아붙이듯이 묻지 않으시고 체면을 살려주시려는 듯이 물으셨습니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모른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묻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요나 또는 요한이어서 그의 아들이었던 베드로를 처음 만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의 원이름 시몬 바르요나라는 이름 대신에 바위라는 뜻으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바위 같았어야 할 신앙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고 배신의 죄를 지은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 대신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신 뜻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뜻도 있어 보이고, 인간적으로 더 친근하게 접근하시려는 뜻도 있어 보입니다. 더구나 나머지 제자들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더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어법은 베드로의 체면을 살려주시려는 배려의 마음이 물씬 묻어나는 물음입니다. 


때로 불같이 충직하면서도 때로 소심하게 망설이는 베드로의 이 이중성은 교회의 역사에서도 잊어버릴만 하면 나타나곤 했습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는 사상 초유의 대혼란 사태에서도 초대교회 이래 공존하던 나머지 네 공동체들,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공동체들을 챙겨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맏형 노릇을 충직하게 하던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이슬람 세력이 동방 지역을 압박해 들어오자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던 나머지 네 공동체들 특히 콘스탄티노플 공동체에 대하여 로마의 수위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동서 교회가 갈라지도록 빌미를 제공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유럽이 그리스도교 문화권 안에서 문명을 배우고 자라나도록 교화시킨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베드로 대성전을 건축하느라고 과도한 모금을 하는 바람에 개신교파들이 떨어져나가게 만들고 자본주의를 출현시킨 산업혁명의 와중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그것도 급속도로 생겨나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에도 자본가들과 결탁된 채 가난한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바람에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나도록 만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충직함과 소심함의 주기가 뒤바뀌었습니다. 즉, 유럽이 세속화되어 가는 와중에 단죄하고 비판하는 고답적 태도만을 고수하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 2천 년 만에 커다란 쇄신을 결의하는 개혁적 자세를 천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공의회가 열리기까지 베드로 사도좌의 각성을 촉구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영국 작가 크로닌이 쓴 ‘천국의 열쇠’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제목부터가 다분히 베드로 사도좌를 겨냥한 이 작품에서 크로닌은 치셤 신부와 밀러 주교를 작중인물로 내세워 충직한 베드로와 소심한 베드로의 역할을 대비시켰습니다. 이 작품이 가톨릭교회 안팎에서 광범위한 호응을 얻으면서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와 로마 교황청 꾸리아의 관료 주교들에게도 일정 정도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 두 교황 >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여전히 감지됩니다. 현대의 베드로 사도좌가 과연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영화 제작의도가 베네딕도 16세와 프란치스코, 두 교황의 만남과 대화, 서로에 대한 배려 속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서 있는 개혁을 원한 베드로와 개혁적인 질서를 원한 베드로 사이에 갈등과 긴장, 배려와 조화가 아슬아슬하게 교차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미 연로한 처지이기에 선임자의 예를 따라 과감한 은퇴를 할지 종신토록 교황직을 유지할지 또 그 이후에는 어떠한 후임자가 출현할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베드로의 두 모습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교황을 대하는 한국 주교단의 어정쩡한 자세를 보더라도 그러한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가톨릭교회의 리더십을 뜻하는 베드로 사도좌의 동향보다도 오늘 복음에서 상기시켜주는 바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했던 베드로의 모습이야말로 베드로의 참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맡겨진 이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모범이 되라는 독서의 권고도 같은 맥락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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