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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세상을 바로 살게 하는 것이 구원이다
  • 이기상
  • 등록 2020-02-24 10: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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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현상’, 몸을 살러 하늘의 명을 성취하는 사건


보통 생명을 이야기할 때 학자들이 필수적인 요소로 들고 있는 것이 영양섭취[신진대사]와 자기복제[생식작용]이다.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생명체란 없다. 개체생명보존을 위해서 영양섭취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생명이 낱생명일 뿐이라면 생명의 사건은 진작 끝났을 것이다. 낱생명은 태어남과 죽음으로 테두리 쳐진 유한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낱생명은 살아 있는 동안 자기와 비슷한 후손들을 생산해내서 생명의 줄이 이어질 수 있도록 힘쓴다. 종족생명보존을 위해서 짝짓기를 통한 생식작용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생명체에게 식욕과 종족번식욕구는 자연적으로 부여된 본성이라고 말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영양섭취[식(食)]와 생식활동[색(色)]을 배제하고 생명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은 생물학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생명이야기다. 다른 외국말과는 달리 우리말 ‘생명’에는 생물학적 차원 외에 형이상학적 차원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명(命)의 차원으로서 천명(天命)과 성명(性命)을 가리킨다. 다석은 생명이라는 현상을 ‘몸을 살러 하늘의 명을 성취하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몸이라는 상대생명을 제물로 바쳐 하나인 한얼이라는 절대생명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몸으로서의 내가 죽고 얼로서의 내가 한얼과 하나가 되는 것이 내 삶의 본디 의미다. ‘생명(生命)’은 본래 그 낱말의 뜻이 ‘살라는 웋일름[하늘의 뜻]’으로서 그 말 속에 두 차원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다석은 생물학적 차원의 식과 색을 버려야만 하늘의 뜻을 따르는 참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산해서 낳은 나는 짐승의 성질을 타고난 짐승이나 다름없다. 이 짐승의 성질은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가지려는 탐욕의 본능을 가지고 있고, 남과 싸워 이기려는 투쟁의 본능을 지니고 있고, 암컷과 교미하여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음욕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생물들도 다 영양섭취와 생식이라는 본능을 타고나지만 자연적 필요에 따라서 먹어야 할 때에만 먹고 짝짓기 해야 할 때에만 짝짓기 한다. 그리고 생물들은 종국에 각기 다 나름대로 자신들의 몸을 바쳐[살러] 우주생명을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하늘의 뜻을 성취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만이 식욕과 음욕에 빠져 식사와 남녀관계가 마치 삶의 목적인 듯이 동물만도 못하게 살고 있다. 다석은 이렇게 탄식한다.


“이 세상은 잘못되었다. 삶의 법칙이 잘못되었으니 못되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삶의 법칙을 식색(食色)으로 생각하고 있다. 재물에 대한 애착과 남녀에 대한 애착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못된 것이다. 세상은 그것이 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있다. 못된 것을 바로 잡자면 밥도 처자도 잊어야 한다. 잊어버려야 한다. 식색으로 사는 것은 음란이요, 전란이다. 못된 세상을 바로 살게 하는 것이 구원이다. (···) 구원이란 외적인 제도를 고치자는 것이 아니다. 내적인 얼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 식색이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사는 것이다. 본 생명인 얼은 한없이 풍족하다. 하느님의 말씀은 마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목마르지 않다. 성신의 운동이 말씀이다. 생명이 영원함을 알면 당장 시원해진다.” 


하느님의 성령인 말숨(말씀)을 숨 쉬어야


▲ Gustav Klimt < The Tree of Life >


다석은 식색의 물신(物神)을 초월하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생명이 자라지 못한다고 본다. 언제나 먹을 것을 삼가고 남녀를 조심해야 한다. 후손 끊어지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정신 끊어지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몸생명 보존에만 넋을 잃지 말고 얼생명을 찾는 데 정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숨은 목숨인데 이렇게 할딱할딱 숨을 쉬어야 사는 생명은 참생명이 아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숨쉬는 얼생명이 참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면 코로 숨쉬지 않아도 끊어지지 않는 얼숨이 있을 것이다. 내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제나는 소용이 없다. 숨 안 쉬면 끊어지는 이 목숨은 가짜 생명이다. 하느님의 성령인 말숨(말씀)을 숨쉬지 못하면 사람이라 하기 어렵다. 하느님이 보내는 성령이 얼나인 참나다. 석가의 법심, 예수의 하느님 아들은 같은 얼나인 영원한 생명이다.” 


이 몸생명은 가짜 생명이다. 참생명은 얼생명이다. 가짜 생명인 몸생명은 죽어야 한다. 죽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짜 생명을 연명시키는 데만 궁리하고 골몰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사람의 몸은 벗어버릴 허물이요 옷이다. 사람의 주인은 얼(靈)이다. 


“어머니 배에서 나온 것이 참나가 아니다. 속알이 참나다. 겉사람(몸)은 흙 한 줌이요, 재 한 줌이다. 그러나 참나인 얼나(靈我)는 우주와 지구를 통째로 싸고 있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나다. 그것은 지강지대(至剛至大)하여 아무도 헤아릴 수 없고 아무도 견줄 수가 없다.” 


다석에 의하면 하느님이 보내시는 얼(성령)이 참나다. 거짓 나가 죽어야 참나가 산다. 나(자아)가 완전히 없어져야 참나다. 그리고 참나는 얼이라 하느님과 하나다. 참나와 하느님은 얼이라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유한과 무한이 이어진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진선미한 얼생명이다. 


“자꾸 바뀌고(變易), 자꾸 사귀고(交易), 그 가운데 바뀌지 않는 불역(不易)의 생명을 가져야 한다. 바뀌는 것은 상대생명이요 바뀌지 않는 것은 절대생명이다. 바뀌는 것은 겉나요 바뀌지 않는 것은 속나이다. 절대세계는 상대세계를 내포하기 때문에 바뀌면서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변화하는 겉나(몸)에서 변화하지 않는 속나(얼)로 솟나면 무상(無常)한 세상을 한결같이 여상(如常)하게 살 수 있다.” 


상대적 존재란, 있어도 없는 것이지만 전체인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사명)이 있어 존재의 값어치를 얻는다. 우리는 나 자신이 상대적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대적 존재는 낱 수가 많은 작은 것들로서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절대적 존재는 모든 개체를 포괄하는 전체로서, 유일 절대의 존재로서 없이 있어 비롯도 마침도 없다. 한마디로 상대적 존재인 개체는 유시유종이고 절대적 존재인 전체는 무시무종이다. 그런데 개체인 우리는 전체인 하느님을 잃어버렸다. 이제 개체가 할 일은 전체로 돌아가 전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개체의 참생명은 전체이기 때문이다. 전체를 회복하고 전체로 복귀하는 것이 영원한 삶에 드는 것이요, 참된 삶을 이루는 것이다. 


이상의 말에서 우리는 얼추 다석 생명사상의 알짬을 가늠할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해서 모든 낱생명은 참생명이 아니다. 낱생명들은 나서 살다가 죽어 없어지는 나들이와 죽살이를 거듭하는 상대적 존재로서 상대생명일 뿐이다. 참생명은 이 모든 상대생명을 감싸면서 그것들을 살게 하고 있는 절대생명으로서 얼생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주생명으로서의 이 얼생명은 텅빔 또는 빈탕한데로서 하늘이며 한얼이다. 모든 낱생명들은 자신들의 생명의 몸집을 태워 바치는 번제를 통해 우주생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데 동참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생명에서 몸의 차원만이 아니라 얼의 차원도 있음을 깨닫고 있다. 얼생명으로서의 인간의 얼나는 우주생명인 한얼과 하나이다. 가짜생명인 몸나에 매달리지 않고 이 몸나를 끝까지 깨고 참생명인 얼나로서 솟날 때 사람은 한얼과 하나 되어 하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다. 우리는 다음 시간에 이 점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 다음 편에서는 ‘사름, 몸 생명의 몸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지난 편 보기


⑴ 참조 이기상, <생명. 그 의미의 갈래와 얼개>, 『우리말 철학사전 2: 생명ㆍ상징ㆍ예술』, 우리사상연구소 편, 지식산업사, 2002, 97~135. 이기상, <한국인의 삶 속에서 읽어내는 생명의 의미. 살림을 위한 비움과 나눔>, 해석학연구 제11집 『종교ㆍ윤리ㆍ해석학』(2003.3.), 한국해석학회 편, 철학과현실사, 2003, 278〜315.


다석은 1961년 7월 22일 <생명(生命)>이라는 시를 일지에 적어놓는다. 아래 이 시를 김흥호의 풀이와 함께 옮겨놓는다.

<생명(生命)>

天命是性命(천명시성명) 천명은 내 속에 들어와 성명이 되고

革命反正名(혁명반정명) 혁명은 언제나 정명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요

知命自立命(지명자립명) 지명은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고 

使命必復命(사명필복명) 사명은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늘에서 와서 땅을 이기고 정신을 일깨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생명이다. 

류영모, 『다석일지 1』, 홍익재, 1990, 831. 김흥호,『다석일지 공부. 류영모 명상록 풀이 4』, 솔, 2001, 161. 


류영모, 『씨알의 메아리. 다석어록. 죽음에 생명을 절망에 희망을』, 박영호 편, 홍익재, 1993, 142. 이 책은 다석이 종로 YMCA 연경반에서 행한 강의들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는 『다석어록』으로 인용한다. 다석은 신(神)에 대해 다양한 표현들을 사용한다. 하나님, 한알님, 한나님, 하늘님, 하느님, 한웋님, 한얼님 등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전개의 일관성을 위해서 <하느님>이라는 표현으로 통일한다.


류영모, 『명상록. 진리와 참 나』, 박영호 풀이, 두레, 2000, 93.


⑸  박영호, 『다석 류영모의 생애와 사상 下』, 다석사상전집 7, 문화일보사, 1996, 220.


⑹ 박영호, 같은 곳.


⑺ 참조 박영호, 『다석 류영모의 생애와 사상 上』, 다석사상전집 6, 문화일보사, 1996, 290.


류영모, 『명상록. 진리와 참 나』, 136/7.


참조 같은 책,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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