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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요구사항 되풀이가 아니라 말씀을 수신하는 일
  • 이기우
  • 등록 2020-03-03 1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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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간 화요일 (2020.03.03.) : 이사 55,10-11; 마태 6,7-15



말씀은 하느님의 힘이요, 기도는 인간의 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사람들에게 보내셔서 당신의 나라를 이룩하게 이끌어주시고, 인간은 기도를 통해서 그 말씀의 뜻을 알아  듣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기운을 받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말씀이 지닌 역할과 그 힘에 대해서 매우 인상적인 표현으로 강조하였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되면 그냥 하늘로 돌아가는 법이 없듯이,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도 그냥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와 눈이 땅을 적시면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그 토양에서 싹이 돋아나게 하며 돋아난 싹이 자라서 꽃을 피워 씨앗을 내고 열매를 맺어 세상을 먹여 살리듯이, 말씀이 사람들의 신앙을 적시면 그 신앙이 양심을 기름지게 하고 그 양심에서 온갖 생각과 말과 행위를 바르게 하며 거기서 비롯된 모든 활동이 진리와 자유의 싹을 돋아나게 하고 정의의 꽃과 평화의 열매를 맺어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차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주제가 기도인데, 기도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수신하는 기제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요구사항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보내신 말씀을 수신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그분의 말씀을 알아들어야 우리가 살아갈 기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도는 인간의 힘이 됩니다. 만일 기도를 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요구사항만 늘어놓게 되면 기도는 말씀으로부터 오는 기운을 전달해 줄 수 없기 때문에 기도는 힘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직접 기도의 정석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주 기도문의 으뜸가는 구조 형식은 기도의 수신인이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누구나 그분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기도의 주체 또는 발신인이 ‘우리’ 또는 ‘저희’가 된다는 것도 버금가는 구조 형식입니다. 여기서 부르는 ‘아버지’ 호칭은 ‘어머니’를 반대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어머니를 포함하여 부모를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그러니까 말씀하시는 분은 부모요, 그 말씀을 듣기 위해 기도하는 이는 자녀들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존재요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기본 사실이 말씀과 기도의 바탕입니다. 


주 기도문 전반부에서는 ‘하느님 나라’와 ‘사랑’을, 후반부에서는 ‘나눔’과 ‘용서’를


주 기도문의 전반부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이름과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에 대해서 먼저 알아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야 하는 것을 비롯하여 그분의 나라가 다가와야 하는 것이나 그분의 뜻이 이룩되어야 하는 것이 모두 인간을 사랑으로 채우시려는 하느님의 말씀의 기운 그 자체입니다. 


주 기도분의 후반부에서 예수님께서 대표적으로 예시하시는 기도의 과목은 서로 나누어야 할 일용할 양식과 서로 베풀고 청해야 할 용서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나눔과 용서를 하지 않으려는 유혹에 빠지게 되면 악마의 하수인으로 전락되는 것이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보호하심을 청하는 일이 부록입니다. 경제적인 정의와 평등, 인간관계의 기본인 서로 받아들이는 수락의 덕목이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서로 간에 이룩해야 할 질서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느님의 힘이요 기도는 인간의 힘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가 모두 사랑으로 채워져야 할 거룩한 질서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 종교가 제 길을 벗어나고, 세상이 종교로부터 하느님의 힘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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